[Family] 대한민국 기혼남녀의 쌈/짓/돈 '베일을 벗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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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750명 인터넷 설문

당신도 자다가 웃음이 나오십니까? 무슨 얘기냐구요? 남편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르는, ‘비자금’ 얘기랍니다. 조사해 보니, 대한민국 주부 열 분 중 아홉 분이 이런 ‘쌈짓돈’을 갖고 계시다네요. 요즘 워낙 시절이 하수상하잖아요. 비자금을 모으는 이유는 ‘목돈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나 자신을 위해 쓰려고’ 순이었습니다. 중앙일보가 젊은 감각의 리빙지 『레몬트리』와 여성포털사이트 팟찌닷컴(www.patzzi.com)과 함께 7월29일부터 8월4일까지 전국의 남녀 75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조사를 한 결과랍니다. 전업 주부 360명, 맞벌이 주부 204명, 기혼 남성 186명이 참가해 주셨어요.

■ 주부들은 90%가 갖고 있고 대부분 500만원 이하 주로 급한 목돈용

우리나라 주부들은 처녀시절 100만원 이하의 비자금을 갖고 있다가(전업 주부 35%, 맞벌이 주부 32%) 결혼하면 100만~500만원대의 비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것(전업 주부 36%, 맞벌이 주부 38%)으로 나타났다.

비자금은 왜 모으는 것일까. 이에 대해 주부들은 '목돈 필요시''나 자신을 위해'에 이어 '친정식구 보태주려고''아이들 사교육 비용' 순으로 응답했다. 친정 등에 갑작스레 돈이 필요할 경우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대부분이었다.

중앙부처 공무원인 황진이(이하 가명.39)사무관은 결혼 직후 갖고 있던 300여만원의 비자금을 남편 몰래 친구에게 쾌척했다. "제일 친한 여고 동창인데 사정이 워낙 딱해 갚지 말라고 했다. 내 힘으로 친구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대견했다"고 말했다.

전업 주부가 비자금을 마련하는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에 사는 사임당(45)주부는 알뜰형. 반찬 하나를 사도 재래시장을 이용하고 텃밭을 가꾸는 이웃과 친하게 지내며 웬만한 채소는 얻어 먹는다. 그렇게 아낀 생활비를 남편 몰래 싱크대 밑에 숨겨놓은 항아리에 매일 1000원씩 넣는다. "살림하다 보면 1000원 한 장이 아쉬울 때가 있지만 항아리는 건드리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지요." 그녀는 매달 초 은행을 찾아 그동안 쌓인 돈을 적금통장에 옮겨넣는다.

서울 쌍문동에 사는 김삼순(39)주부는 큰손형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1400여만원이라는, 규모가 큰 쌈짓돈을 갖고 있다. 이사 같은 굵직한 집안 행사가 있을 때 목돈을 잘라 모아왔다. 예를 들어 아파트를 옮기면서 복비, 이사비용 등을 저렴하게 이용해 50여만원을 저금했을 정도. 매달 100만원대 규모의 아이들 학원비를 낼 때도 생활비에서 10만원씩 잘라 본인의 통장에 입금하는 식이다.

부업형도 있다. 서울 상계동에 사는 서시(37)주부는 어딜 가든 "처녀세요?"라는 질문을 들을 정도의 용모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아이를 보내놓고 전단지 돌리기에 나선다. 아파트 집집마다 방문하면 하루 3만원의 일당을 받는다. 젊고 예뻐 보여서인지 경비아저씨에게 걸린 적이 한 번도 없다.

"군것질을 즐기는 남편에게 간식과 안주를 만들어주고 한 접시에 1만원씩 받아요. 남편은 '이런 게 어디 있느냐'면서도 즐겁게 돈을 내놓아요. 그걸 모아 액세서리나 주방기구를 사는 데 쓰지요."

비자금(통장) 거처로 전업 주부는 '안방 서랍'을, 맞벌이 주부는 '회사'를 가장 선호했다.

이렇게 모은 돈은 어디에 쓰일까. '아직 안 썼다'가 대부분이었다. 남편의 사업 자금 등 급한 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 남편에게 깜짝 선물을 하거나 남편 몰래 아이들에게 비싼 장난감을 사줄 때 필요하다는 주부도 있었다. 케이블TV 홍보담당으로 있는 성춘향(32)씨는 아이 치아교정에 수백만원의 목돈이 필요해 쌈지를 풀었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는 어머니로서의 방어본능을 대한민국 주부 90%가 갖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남편들도 쌈짓돈을 갖고 있을까. 이에 대해 전업 주부는 69%가, 맞벌이 주부는 67%가 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댁의 남편은 어떠신가요.

■ 남편들은 83%가 갖고 있고 용돈 쪼개서 모아 회사 서랍에 보관

남편들도 비자금이 있을까. 물론 있다. 하지만 주부보다는 적어 열 명 중 여덟 명(83%) 꼴이다. 어떻게 모으냐는 질문에는 '용돈에서 쪼갠다'(32%)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월급에서 아내 몰래 떼어 놓는다'(22%) '따로 재테크를 한다'(16%) 순이었다. 재테크 수단으로는 금융상품(44%), 주식(37%)이 대세를 이뤘다.

비자금을 숨겨놓는 곳은 사무실 서랍(55%)이 대부분이었고 서재 서랍도 23%나 됐다. 들켰을 경우에 대해서는 '모른 척 해달라고 요구한다'가 26%로 가장 많았지만 '계속 잡아뗀다'(24%), '가족통장으로 합친다'(22%), '함께 공개하자고 물고 늘어진다'(21%)도 고른 비중을 차지했다.

아내에게도 비자금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77%가 그럴 것이라고 응답해 아내가 남편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전업 주부 69%, 맞벌이 주부 67%)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역시 대한민국 남편들에게 아내는 제일 든든한 '백'이다.

정형모 기자
남경화(주부통신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그래픽=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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