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해상로 방위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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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의 방위력증강에 관해 한국과 미국의 입장에는 뚜렷한 거리가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의 입장은 아시아국가들의 공통된 입장이기도 하다.
미국은 일본이 자체방위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안보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정도로 재무장을 한다고 해도 그게 곧 불안과 위협의 원인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그런 낙관적인 태도는 일본이 다시 군사대국이 되어도 진주만 공격 때처럼 미국을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반면에 아시아국가들, 특히 한국은 지금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한 군국주의 부활, 보수화무드를 배경으로 일본이 미국의 「안보우산」을 벗어날 정도의 재무장을 하는 것은 주변국가들의 안전에 위협이 될 소지를 안고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 증강이 소련을 가상적으로 하는 지역안보에 필요한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 우리는 재무장된 일본을 잠재적인 불안요소로 보는 것이다.
우리들의 입장이 이렇기 때문에 지난 8월30일부터 9월2일까지 하와이에서 열린 미-일 안보실무협의회에서 미국측이 일본에 1천해리까지의 해상수송로(Sea Lane)를 방위하도록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일본도 미국의 요구에 응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데 대해서 우리는 적지않은 불안과 불만을 느낀다.
미국은 일본에 의한 1천해리 수송로방위가 미국의 소련견제를 지원하는 동시에 한국방위에도 직접 관련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해군의 전력은 북한의 위협에만 대처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련이 태평양 해군력을 강화하고있는 지금 일본만이 미국의 세계적인 대소전략과 지역안보의 실질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미국입장의 전제에는 우리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지난 6월 스테술 미 국무차관과 이크레 국방차관이 상원외교위서 증언한 바도 있지만 소련은 최근 몇년 사이에 극동군사력을 대폭 증강했다.
극동에 배치된 소련의 공군기는 3천대를 넘어섰다. 소련이 보유하고 있는 전체 전역핵 SS-20의 3분의1인 1백기가 극동에 배치되고, 소련 태평양함대에는 전체 잠수함의 3분의1, 해상공격함의 4분의1이 배치되어있다.
거기다가 소련은 베트남의 해·공군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되어 중-소 국경지대의 소련기지의 사정권밖에 있던 필리핀의 미군기지와 중공남부 일대가 소련폭격기의 공격거리 안에 들어갔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에 중동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국, 일본에 이르는 해상수송로는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에 1천해리 해상수송로 방위에 필요한 P3C대 잠초계기와 F-l5전투기, 잠수함을 크게 늘리고 유황도를 사실상의 전투기지화 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 역시 지난 8월18일 확정된 82년도 방위백서에서 처음으로 1천해리 방위목표를 명기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일본이 경제대국으로서의 국력에 걸맞는 지역안보상의 역할을 맡으라는 미국의 요구를 지지한다. 그러나 일본의 재무장과 지역안보의 역할에는 관계국가들이 합의하는 상한선이 있어야하고 오해의 여지가 없는 성격규정이 있어야 한다. 일본군사력의 적정선을 정할 때는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가들의 입장과 전력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특히 일본이 해상수송로 방위를 포함하여 서태평양지역 안보에 참여하는 것이, 스윙전략에 따른 아시아-태평양지역 미군의 타지역 이동을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이 가기 때문에 일본의 갑작스런 군사력증강에 우리는 더욱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레이건 행정부가 소련 포위전략에만 급급하여 아시아지역의 군사외적인 현실을 돌보지 않고 일본에 덥석 「큰칼」을 맡긴다면 고양이에 반찬가게를 맡기는 실수를 범할는지도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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