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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억원짜리 수능의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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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사회에디터

수능이 만신창이가 됐다. 올해는 2년 연속 문제 오류가 생겼고, 변별력 상실병(病)까지 도졌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 책임은 물론 교육부와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있다. 지난해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오류를 1년이 지나서야 인정해 몰매를 맞더니, 올 수능(11월 13일)의 영어 25번과 생명과학Ⅱ 8번 문항 복수정답 결론도 오늘에야 발표한다. 1993년 수능 도입 이후 초유의 일이다.

‘안개 입시’에 방향을 잃은 수험생과 학보모들은 학원으로, 또 설명회장으로 달려간다. ‘사교육 무한리필’을 교육당국이 또 도와줬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부러워하는 한국 교육의 자화상이다.

 사실 수능은 공짜가 아니다.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수험생은 응시료를 낸다. 올해도 전국 60여만 명이 평균 4만2000원씩 250억원을 지불했다. 국어·영어·수학과 탐구 등 4개 영역 기준이다. 수능에 드는 단순 비용(액면가)은 350억원. 이 중 교육부가 특별교부금 100억원을 대준다. 평가원은 문제 출제·검토 위원 500명과 관리위원 200명의 수당 등으로 90억원을 쓴다. 문제를 잘못 냈든 아니든 한 달 합숙한 출제위원에게는 평균 1000만원(일당 30만원), 검토위원에게는 500만원(일당 20만원)을 준다. 월급 외의 목돈이어서 수능 마피아들의 ‘선후배 용돈 챙겨주기’란 지적도 나온다. 전국 1216개 고사장에는 10만 명이 넘는 교사가 시험감독(일당 12만원)으로 동원됐다. 감독·관리 수당만 120억원이 들었다. 인쇄·배달·채점비도 수험생 응시료로 충당한다.

 수능은 ‘돈 방망이’다. 액면가는 350억원이지만 관공서 출근시간 연장, 지하철 증편 운행, 비행기 이착륙 금지 등에 드는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특히 수능 덕에 먹고사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성적을 공짜로 갖다 쓰는 대학은 물론 EBS·사교육업체, 심지어 초콜릿과 찰떡 장사까지…. 반면 응시료를 낸 수험생들은 매년 ‘골탕’만 먹는다.

 수능 시스템은 수술이 불가피하다. 설익은 안이 난무한다. 진영 논리에 따라 자격고사·절대평가 전환 같은 말도 나온다.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한 게 없다. 그만큼 대한민국 입시가 복잡하고 정파적이라는 방증이다. 교육부는 ‘수능혁신TF’를 만들어 종합개선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면피하려 서둘다간 큰 화(禍)를 부를 수 있다. 꼭 되새겨야 할 사안을 정리해봤다.

 첫째, 정치가 입시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수능 혼란의 근인(根因)은 역대 정권이 제공했다. “EBS 교재에서 70%를 우려내라”(2010년)는 이명박 정부의 ‘쉬운 수능’ 압박이 박근혜 정부에까지 이어지다 결국 곪아 터졌다. 대통령의 관심은 고맙지만 그렇다고 말 한마디에 입시가 출렁여선 곤란하다. 외국 대통령이 “대입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둘째, 시스템은 당장 보완하되 종합개선은 3년 예고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우수 교수·교사 인력풀을 만들고 교사도 출제에 많이 참여시켜야 한다. 이들의 노력을 연구업적과 재능기부로 인정해 주는 방안도 필요하다. 자격고사와 절대평가 전환은 3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폐지 논란과 맞물린다. 치열한 논의와 시간이 필요한 핵폭탄이다.

 셋째, EBS 배불리기를 중단해야 한다. 달달 외워야 할 특정 문제집이 고교 교실을 장악한 현실은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EBS는 전체 수입의 절반 가까운 1000억원을 출판사업에서 올린다. 공영 방송사인지 민간 출판사인지 헷갈린다. 철저한 감사와 검증이 필요하다.

 넷째, “난이도는 신도 맞추기 어렵다”는 말은 핑계다. 상대평가의 핵심은 변별력이다. 쉬운 수능 기조를 유지하더라도 적정 난이도는 필수다. 두세 문제를 틀려도 1등급이 나와야 그나마 수용성이 있다. 미국 SAT는 2400점 만점인데 대학들은 2250점 이상은 능력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입시 독립기구를 제안한다. 단언컨대 다음 정부도 생색내기용 입시 개편을 할 것이다. 해방 이후 대입 골격만 19번 뒤집혔다. 정권이 사교육과 연애하는 것 같다. 악순환을 끊으려면 입시 독립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공정성·객관성·독립성·수용성이 생명인 수능과 대입의 방향이다.

양영유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