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552> 요트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김상진 기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가까워지면서 국내에도 요트 시대가 서서히 열리고 있습니다. 부산이나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 같은 곳에 요트가 정박해 있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부산에는 요트 유람선도 등장했습니다. 요트 제작업체가 하나 둘 생겨났고, 직접 나무를 깎아 요트를 만들 수 있는 공방이 등장했습니다. 국내에서 이제 여명기에 접어든 요트에 대해 알아봅니다.

요트는 ‘돛단배’다. 엔진으로 움직이는 ‘보트’와 구별된다. 이렇게 말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독자가 있을 듯하다. 요트가 머물러 있는(계류 중인) 항구 사진에는 돛이 보이지 않는다. 그건 돛을 내려서일 뿐, 기본적으로 요트는 돛을 단다. 요즘 요트는 편의성을 고려해 대부분 엔진도 장착하고 있다. 

가격 비싸 부담 … 일본산 중고 많이 찾아

길이 21m에 92인승으로 국내에서 가장 길고 탑승 인원도 많은 요트인 ‘마이다스 720’호가 최근 부산 앞바다에서 운항을 시작했다. 용호만 유람선터미널을 출발한 마이다스 720호가 왼쪽에 광안대교, 오른쪽에 해운대 마린시티를 바라보며 항해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10일 부산에서는 요트 유람선이 운항을 시작했다. 92인승 ‘마이다스 720’호다. 길이 21m, 폭 9.2m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낮에는 부산 용호만 유람선터미널을 출발해 광안대교~누리마루를 돌아오는 1시간 코스를, 밤에는 광안대교~해운대~오륙도를 누비는 1시간20분 코스를 운항한다. 배 안에 미니 바, 영상 시설, 무대 등을 갖췄다. 밤에 운항할 때는 관악 연주를 들으며 뷔페를 즐길 수 있다. 마이다스 720은 우리 기술로 6개월 만에 제작했다. 유람선터미널 운영사인 ㈜삼주의 계열사 삼주에스텍이 전국에서 요트 제작 전문가 20여 명을 스카웃해 만들었다. 프랑스에서 요트 개략도를 들여온 뒤 이를 참고해 건조했다. 마이다스 720을 만든 뒤 중국·인도 등 해외에서 주문이 잇따른다고 한다.

 사실 세계 요트시장에서 볼 때 마이다스 720처럼 관광객들이 타는 연안 유람선은 일종의 틈새 시장이다. 선진국에 형성된 주시장은 개인용 요트다. 개인용 중엔 큰 바다를 누비는 크루즈용 호화 요트도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요트에 눈뜨기 시작한 나라에선 이런 수요가 거의 없다. 시장을 형성하려면 무엇보다 ‘요트 항해’에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나라에는 마이다스 720 같은 영업용 유람선 요트를 선보이는 게 필요하다. 

2009년 752명이었던 국내 요트조종면허 소지자는 지난해 말 5610명으로 늘었다. 4년 새 7배 이상이 됐다. 여기에 유람선형 요트, 또는 개인 요트에 손님으로 탑승해 항해를 즐기는 계층까지 포함하면 국내 요트 인구는 약 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요트 인구가 늘어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뭐니뭐니해도 비싼 가격이다. 국내에서 많이 거래되는 새 요트는 프랑스 베네토와 제뉴, 미국 헌터와 카타리나, 독일 발바리아사의 요트다. 이런 회사 제품 가운데 보급형으로 볼 수 있는 길이 9∼10m(10인승 안팎) 요트 가격이 1억~4억원이다. 값은 인테리어에 따라 차이 난다. 고급형인 핀란드 발틱과 네덜란드 컨테스트사 제품은 보급형보다 1.5 배쯤 비싸다.

 이런 가격은 초보자들에겐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초보자들이 주로 찾는 게 일본산 중고 요트다. 괜찮은 중고품 가격이 2000만~1억원가량이다. 수백만원짜리도 있지만 대부분 수리비용이 많이 든다.

 요트를 살 때는 유지비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길이 9m가 넘는 요트라면 항구에 놓아두는 계류비만 1년에 400만원이 넘는다. 항해 기름값에, 1년에 한번 배를 들어올려 선체에 붙은 조개를 떼어내고 칠을 다시 하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연간 유지비가 1000만원에 가깝다.

마이다스 720을 만든 삼주에스텍 말고도 국내에는 몇몇 요트 제작업체가 더 있다. 광동FRP·푸른중공업·JY중공업·그린오션라이프 등이다. 부산바다에서 2012년 4월 상업운항을 시작한 ㈜벡스코(부산전시컨벤션센터)의 ‘요트B’는 광동FRP가 건조했다. 길이 16m의 26인승으로 배에서 프레젠테이션과 비즈니스 회의 등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고작 이 정도다. ‘조선 강국’ 이미지와 달리 요트는 뒤처져 있다. 기반 기술은 탄탄하다. 조선산업뿐 아니라 소재산업 또한 발달했고, 국산 요트용 엔진까지 개발됐다. ㈜삼주 정종석 이사는 “우리나라는 요트 건조에 필요한 인력과 인프라가 충분해 얼마든지 요트 생산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있는 요트 대부분은 해외에서 들여온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산 요트는 컨테이너에 실어 들여오지만, 가까운 일본산은 사람이 직접 몰고 온다. 돈을 받고 요트를 배달해 주는 이들을 ‘요트 딜리버리’라 부른다. 현재 국내에서 요트 운송을 전문으로 뛰는 딜리버리는 10여 명이다. 아르바이트 형태로 활동하는 딜리버리들까지 포함하면 수십 명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요트 딜리버리들은 일본산 요트를 수입하는 일을 주로 하지만, 요트 선진국에서는 활동영역이 다양하다. 장거리 경주에 출전했다가 경기가 끝난 요트와 휴가 때 장거리 요트 여행을 한 요트를 원래 항구로 옮기는 일 또한 요트 딜리버리들 차지다.

우리나라 요트 배달운송료는 보통 1.6㎞(1마일)당 1만원. 항해에 필요한 엔진 연료비와 식대, 각종 수속경비 등은 따로 받는다. 부산에서 210㎞쯤 떨어진 후쿠오카(福岡)로부터의 운송비는 200만원쯤이다. 요트로 하루 만에 올 수 있는 거리여서 초보 딜리버리들이 많이 활동한다. 970㎞ 떨어진 도쿄(東京)는 600만원에다 경비를 보태 700만∼800만원쯤 받는다. 거리가 멀면 할인이 적용된다. 부산에서 1930㎞ 떨어진 홋카이도(北海島)에서 들여올 때가 그렇다. 거리요금 1200만원에 경비를 포함하면 1500만원이 된다. 하지만 1000만원만 받는 게 보통이다.

요트 배달요금 1.6㎞당 1만원, 경비는 별도

마산대 조선해양요트과 학생들이 오리엔탈 우든보트 공방 한희택 대표의 지도로 요트를 만들고 있다. [사진 오리엔탈 우든보트 공방]

 국내 딜리버리 원조는 요트 모험가인 윤태근(52) 선장이다. 2003년부터 활동했다. 지금까지 그가 혼자 일본에서 가져 온 요트가 150여 척. 이를 통해 돈을 벌어 요트 세계일주 여행을 했다. 윤 선장은 2009년 10월 11일 한국 국적 요트를 타고 부산에서 세계일주를 떠나 1년 8개월 만인 2011년 6월 7일 부산에 돌아왔다. 이는 한국에서 출발한 첫 요트 세계일주로 기록됐다.

 중고 요트 판매회사의 조향연(62) 대표 역시 딜리버리로 요트와 연을 맺었다. 충북 청주에서 하던 의류사업이 어려움을 겪자 2008년 부산으로 와서 딜리버리를 시작했다. 딜리버리를 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으로 요트를 한 척 한 척씩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요트 딜리버리는 큰 자본 없이도 쉽게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바다에서 바람 방향이 급격히 바뀌는 것 같은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항해 중 엔진이나 장비가 고장 났을 때 수리할 수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때론 요트 구매 대행까지 맡기에 항해능력뿐 아니라 현지 매물정보도 많이 알아야 한다. 흥정을 해야하니 외국어가 필수고, 기본적인 요트검사 능력도 갖춰야 하며, 통관 절차도 알아야 한다. 최근 들어 일본산 중고 요트 구매자들이 늘면서 요트 동호인들끼리 팀을 꾸려 일본에 건너가서는 요트를 사서 직접 몰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요트를 타는 것뿐 아니라 직접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매니어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전문 공방에서 요트 만드는 법을 배운다. 요트 제작방법을 가르치는 공방은 3년 전 3곳이었다가 하나 둘 늘어 지금은 6곳이 됐다.

 부산의 ‘오리엔탈 우든보트’ 공방도 그 중 하나다. 이 곳의 한희택(52) 대표는 “작은 물건 하나도 자기 손으로 만들어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바다 위를 떠다니는 요트를 직접 만든다는 생각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트공방에서 실제 항해가 가능한 길이 3∼4m짜리 작은 요트를 만드는 데 재료비가 약 350만원, 수강료까지 합치면 약 500만~600만원이 든다. 한 척을 만드는 데 보통 3개월이 걸린다.

 수제요트가 작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나무로 큰 배를 만들었던 것을 떠올리면 된다. 실제 외국에는 지금도 손으로 대형 요트를 만드는 업체들이 많이 있다.

 한희택 대표는 외국 수제요트 설계도에 적힌 메모를 보여줬다. ‘There is no reward in the next lifetime for not building a boat in this one.’(지금 생에서 요트를 만들지 않는다면 다음 생애에는 보상이 없다.)

 설계기술과 전혀 관련 없는 메모를 도면에 적은 요트 디자이너의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이 국내에서도 갈수록 늘고 있다.

글=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