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담임제는 무모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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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부터 국민학교와 중학교에 3년간의「고정담임제」가 도입, 실시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3년동안 담임을 바꾸지 않고 학년만 올라가는 재도다.
서울시교위는 이를 국민학교 20개교와 중학교 10개교를 실험학교로 선정, 83학년도부터 실시하고 문교부는 그결과에 따라 전국에 확대실시 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같은 방침은 어느 면에서 보면 학교교육의 일대개혁처럼 보이는 중대한 변화다.
그러나 그 변화는 좋은 결과를 가상하고 있는 것이겠으나 그 결과가 반드시 현실에서 좋을 것으론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두려운 생각도 든다.
이 제도를 실시하면서 당국이 제시한 장점들은 물론 외면적으로 그럴듯하다.
현행의 1년단위 담임제도가 첫째 과대학교의 과밀학급 상황에서 교사와 학생간의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한 수제관계가 어렵고, 둘째 교사가 학생의 적성과 생활환경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려워 진로지도와 생활·학습지도에 많은 곤란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3년 고정담임제가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은 물론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 생각자체를 나쁘다고 할 뜻은 없다.
그러나 과연 과대학교, 과대학급 상황에서 생기는 사제간의 소원한 관계가 「과대학교, 과대학급을 해소하지 않은채」 3년간 교사를 고정시킴으로써 해소될 것인가가 의문이다.
또 교사가 학생의 적성과 생활환경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성립하기 어렵다. 하루 이틀도 아닌 1년이란 세윌동안 학생들의 적성과 생활환경을 몰라 지도에 어려움을 느끼는 교사라면 그는 이미 교사자격이 없다. 그런 교사에게 3년을 맡겨본들 더 나은 교육효과가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오히려 그같은 발상은 안이한 교육행정의 소산이며 현실을 외면한 다분히 위험한 실험사고의 결과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 학교교육의 현장은 이상적인 교육의 장이 아니며 상업주의, 물질주의, 배금주의로 오염된 생존경쟁의 마당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같은 사태의 책임이 모두 교육자에게 건가될 수 없으며, 교사들의 교육자적 양심에 대해 전적으로 의심하는 뜻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현실인식에서 학교교육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용기있게 대처하는 것이 진실로 바람직한 교육자의 사명이다.
교사의 심성과 질적 차이는 현실적으로 천차만별이며, 그들의 인격, 그들의 교육적 능력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런 현실에서 1년간이나마 자녀들을 우수한 교사, 양심적 교사에게 맡길 수 있는 학부모들의 기쁨은 두말할 것이 없겠으나 불행히 무능하고 비양심적인 교사에게 1년도 아니고3년을 맡겨야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 것인가도 생각해야겠다.
어린 학생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감수성이 강하고 교사의 영향도 심각하게 받고있는 어린 학생들이 이상성격의 교사나 편파성이 강한 교사를 만날 경우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지 안을수 없다.
한번 미움을 받기 시작한 어린 학생은 3년간의 세윌을 교사의 부당한 구박을 받으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할 뿐더러 그로해서 일생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점을 상상 할 수 있다.
교육은 가장 나쁜 경우까지 신중하게 염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런 불행한 경우 말고도 어린이들은 새학년에 새로운 친구를 폭넓게 만나고 그들과 사귐으로써 인생의 경험을 넓혀가는 것이다. 새학년에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는 사실자체가 바로 교육의 한 차원인 것이다.
그렇건만 그것을 무시하고 3년간을 고정된 친구와 만나게 하고 한 담임선생만 만나야한다면 그처럼 답답하고 옹색한 교육도 없을 것이다.
더우기 의무교육연령인 국민학교와 중학교과정에서 학생의 적성파악이니 진로지도니 하는 것을 내세워 3년고정담임제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은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으로 보아 우리 교육행정당국은 지나치게 「교육」을 경시하는 사고에 젖어있다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또 너무 우리의 교육현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의혹도 갖지 않을 수 없다.·
「3년고정담임제」와 같은 무모한 제도를 학교교육의 현장에 끌어들여 실험하는 일은 다신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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