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보고…|〃우리역사부터 주체적으로 연구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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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서울의 모대학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으면서 우리나라 근대사, 그 중에도 특히 일제시대사 연구에 손을대고 있었다. 10년전에 생각하는 바 있어 일본에 건너가 연구를 계속하게 되었는데 그때 놀란 것이 두가지 있었다.
그 하나는 일본에 우리근대사 관계 사료가 예장외로 굉장한 양이 소장되고 있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우리의 주체적인 방법론의 정립없이 제멋대로 역사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더우기 국립국회도서관 혜정자료실·국립공문서관·외무생외교사료관·동경대학의 명치문고와 신문연구소 자료실등에 소장되어 있는 사료에 대하여는 놀라움과 흥분을 금치 못하였다. 그중에서도 국회도서관 혜정자료실의 수많은 1차사료를 뒤지기 시작했을 때의 흥분과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기차 차량 하나에 가득찬 다고 하는「재등 실」문서를 비롯하여「사내정의」문서·「정상 형」문서등에 파묻혀 본격적 연구에 몰두 4∼5년 고생을했다.
마침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를 보고 느낀 바도 있고 우리근대사 연구의발전을 바라는 의미에서 한 두가지 제언을 하려한다.
첫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전체적으로도 그렇지만 근대사 분야의 연구 수준이 낮고 저조하다는 점이다. 대학에서도 사학과에 오는 학생의 질과 수가 미약하다고 들었다. 뿐만아니라 일본에 유학한 역사전공학생 수도 극히 적어 8백 여명중 한국인은 1%정도에 지나지 않다. 한 나라가 발전되려면 무엇 보다도 역사의식이 있는 훌륭한 일꾼이 많이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그런 사람을 기르기 위해서도 전문가의 양성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일본의 사료관에 다닐적에도 단 한사람의 한국학자나 학생이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알다시피 역사학은 다른 학문과는 달라 사료의 본격적인 발굴과 분석없이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학문이다.
더우기 우리역사는 일제시대 사료와 기술적 수단을 독점한 일본인 학자들에 의하여 다루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많은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사회「정체론」「타율성사관」등 일련의 이른바「식민지사관」이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주체적인 입장에선 역사연구가 절실히 요구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말만 하지 말고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자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새세대의 역사가를 길러야 할텐데, 여기도 많은 문제가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것은 역사연구에는 빼놓을 수 없는 사료 해독력이다. 오늘처럼 한자 내지 한문교육을 안해서야 유능한 젊은 역사가를 기를 수는 없다고 본다. 앞서 말한 그런 사료들도 학문실력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 하다. 특히 문언류는 일본특유의 것인데 그도 협문초서의 독해력만 있으면 비교적 간단하다고 본다.
영어시간을 줄이는 한이 있어도 해야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은 우리나라 근대사 연구에는 일본근대사의 지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 근대사는, 말하자면 일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결국은 식민지로 전락된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족해방투쟁사를 연구하는데도 누르는 힘을 모르고서야 바르게 파악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근대사는 일본근대사와 겹치는 면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들면 일본근대 자본주의 발달사를 볼때에도, 우리의 희생이 일본자본주의 발달에 미친 영향을 빼놓고서는 완전 하다고 볼 수가 없듯이 일본근대사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있다는 것은 우리 근대사를 바로 잡는데도 좋은 힘이 될 것이다.
일본사람들 중에는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수가 상당히 되고, 그 연구수준도 매우 높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 일본의 식민지 였던 쓰라린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일본 역사를 연구 한다는것에 대하여는 일종의 저항을 느끼는 면도 없지않다. 그렇기 때문에 여태까지 일본사 연구를 거의 무시하다시피 해왔다.
일본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근대사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일본근대사 지식은 필요 불가결하다고 본다. 일본에 「조선사 연구회」「조선학회」등의 학회가 있어, 해마다 많은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의 일본연구는 요즘 거의 시각단계인데, 그 중에서도 역사적 연구의 수준은 가장 미미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우리 역사에 미친 이른바 식민지 사관의 후유증을 씻는 문제이다. 일본 학자들의 우리 역사 연구는 명치시대 말기부더 왜정시대에 걸쳐서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시기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므로 당시의 일본인 학자들은 역사 연구의 방법에 큰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고대사에서는『일본서기』 나 『고사기』같은 신빙성이 미약한 고전을 금과옥조로 믿었고, 근대사에서는 한국사회「정체론」 따위의 역사상을 테두리로 삼았던 것이 그 예이다. 1930년대 일본의「마르크스」주의 역사가라고 일컫는 사람들의 연구도 앞에서 말한 테두리는 부수지 않고, 실증적인 작업만을 되풀이 하었기 때문에, 우리 역사에서 문제되는 식민지사관을 도리어 더욱 굳히게 하는 결과만을 남겼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근대사 연구의 앞으로의 방향은 일제가 남긴 많은 사료를 광범하게 다루어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시키는 동시에 철저한 사료비간을 해야한다는 점이라 하겠다.
사료의 전면적 그리고 철저한 비판없이 이미 이루어진 연구성과만을 맹목적으로 광범하게 다루는 것만이 아카데믹하다고 생각 한다면, 식민지사관으로부터의 탈피는 어려울 것이다. 비등하고 있는 일본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대응책과도 관련하여 우리 근대사연구의 본격화가 더욱 절실하다고 느껴진다.
▲1925년 경남계생 ▲1951년 서울대 법대졸 ▲수도여고대·건국대 교수 역임 ▲일본동경대 대학원졸 (문학박사) ▲현재 일본쓰꾸바 (축파) 대교수(한일관계사·일본근대사 강의) ▲저서「일제의한국침략정책사」「한국 농업의 역사」「일제급저계의 한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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