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 침체 가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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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증권관련 정부정책의 시행시기와 제도 도입이 늦어지면서 가뜩이나 침체를 겪고 있는 증권시장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증권사에 새로 도입키로 한 일임형 랩어카운트(Wrap Account)는 주식을 주문하는 방법을 둘러싸고 업계간 마찰이 해소되지 않아 시행시기가 불투명하고, 3개 증권시장의 통합문제도 관련기관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채 표류하고 있다.

증권업계 일각에선 "정부가 (긴급한 현안을 눈앞에 두고) 일손을 놓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증권사 임원은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혼선이 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불투명한 랩어카운트 도입=증권사가 고객이 맡긴 돈을 알아서 운용하는 일임형 랩어카운트가 지난 2월 허용됐다. 당초 정부는 4월부터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이 제도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증권사들이 지점에서 받은 주문을 본사로 모아 한꺼번에 주식을 주문하는 포괄주문 방식을 시행하려 하자 투신사측에서 강력하게 제지하고 나섰다.

투신협회 관계자는 "포괄주문을 허용할 경우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투신업법(자산운용업법으로 개정 예정)에서 금지하고 있는 유사 투자신탁행위가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증권업협회는 "포괄주문과 유사 투신행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정부는 "두 업계가 상호협의를 통해 해결하라"며 업계에 공을 넘겨버렸다. 업계간의 이견으로 문제가 된 사안을 당사자끼리 알아서 하라고 방치한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미온적인 태도에 대해 두 업계는 모두 불만이다. 투신업계는 "당초 포괄주문 금지 쪽으로 방향을 정했던 재경부가 대형 증권사의 로비에 밀려 허용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게 빌미가 됐다"고 주장한다.

반면 증권업계에선 "일임형 랩어카운트에선 포괄주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정부가 알면서도 두 업계가 협의하라고 한 것은 무책임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증권시장 통합 표류=당초 정부는 증권거래소.코스닥증권시장.선물거래소를 통합해 지주회사 체제로 만든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지주회사 체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자 재정경제부는 시장들간의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수정 제안했다.

이에 따라 최근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는 두차례 협의를 거쳤다. 그러나 이해가 팽팽하게 맞선 두 시장의 의견차가 자율적으로 해소되기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입장 차이가 워낙 커 자율적 협의가 이뤄질 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수년간 끌어온 시장 통합문제가 이런 식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이러다간 통합논의가 몇년 더 끌다가 아예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한 관측마저 나온다.

방카슈랑스의 경우 당초 정부는 지난해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방침이었으나 업계간의 마찰 때문에 최근에야 관련법이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 8월 시행까지는 불과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직원 교육, 정보시스템 구축 등 해야 할 일이 많은데 3개월로는 어림도없다"며 "금융업계의 판도변화를 가져올 큰 사안인데도 정부가 너무 굼뜨게 일을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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