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포 같은 질책으로 피고인 오만에 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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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민들이 수사결과를 믿어주지 않았을 때가 가장 곤혹스러웠습니다. 수사 검사로서 TV에 나가 해명할 때도 그랬고…그때의 심정은 건방진 얘기지만 저자신의 일신을 버리더라도 국민들의 오해는 풀어야겠다는 것 뿐 이었습니다.
31세의 검사 초년병으로 이·장 부부 어음사기사건의 핵심인 이철희·장영자 피고인의 사기 부분을 맡은 김상희 검사(서울지검 남부지청)는 수사도 공판도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고 했다.
『처음 이·장 부부를 대한 것은 5월 16일 이었어요. 그전에는 솔직히 말해 자금소비처·은닉재산·배후세력이 수사의 초점이었지요. 이 피고인은 목소리도 잔잔하고 정보통이라서 인지 말도 적게 해 처음에는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지요.
반대로 장 피고인은 말이 무척 많더군요.』
특히 장 피고인은『당신은 나룰 수사할 상대가 못된다』는 우월감을 가진 듯 말끝마다 『경제를 아느냐』고 우습게 여기는 것 같았다는 것.
그러나 자신들의 사기범죄가 곧 처벌의 핵심이란 것을 눈치챈 장 피고인은 김 검사가 공판 때까지 자신들의 상대라는 것을 알고는 매달리더라고 했다.
『확실히 장 피고인은 판만이 빨랐어요. 2∼3번 신문했더니「법정에서 다루더라도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인신공격이나 모욕·매도하는 일은 법정에서 삼가달라」고 사정하더군요. 저도 진술내용을 번복하면 칼날 같은 신문을 할 테니 변명준비나 해두라고 다짐을 받았어요.
그러나 이·장 피고인은 21일의 5회 공판에서 결국 범행사실을 부인, 김 검사의 불호령(?)을 듣고 말았다.『뉘우치는 사람이 왜 그리 말이 많으냐』『사기가 딴 세상 일 인줄 아느냐. 7천억 원을 서민들의 7만 원처럼 만지고 전국을 소용돌이로 몰아 넣는 게 사기다』는 속사포 같은 말에 이·장 부부는 고개를 떨군 채『모든 증거에 동의한다』며 항복하고 말았던 것. 『검찰의 운명이 걸려있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상사와 선배·동료들이 모두 하신 것이고, 저는 심부름밖에 안 했어요. 여론이 저희들을 성급하게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수사가 얼마나 정확했는가는 공판과정에서 모두 입증되지 않았습니까.』
칼칼한 경상도 사투리의 젊은 검사는 자신이 맡은 사건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넘쳤다. 경남 산청 출신, 경북고(69년)∼서울대 법대(73년)∼사법시험 16회(74년)로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부인 박영미 여사(29)와 l남 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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