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노인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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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 서부 시애틀에서 포틀랜드로 가는 고속도로는 그럴 수 없이 아름답다. 남(남) 빛의 파도가 금방 자동차 바퀴를 적실 것 같다. 곳곳의 우거진 숲 사이엔 휴게소가 있다.
여기서 차를 멈추면 우두커니 서 있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 앞엔 기다란 통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다. 코피 포트와 종이컵. 누구나 따라 마셔도 된다. 물론 무료로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그 광경을 바라본다. 어쩌다 말을 걸면 갈 길이 멀어진다. 노인의 일거리로는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백화점엘 가도 먼저 만나는 사람은 노인이다. 할머니 아니면 할아버지 점원. 포장이 느려 답답하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공항에서도, 관광버스 터미널에서도,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원 벤치도 이른 새벽부터 노인들의 차지다.
분주한 나들이, 부산한 일거리들을 보면 그곳 노인들은 오히려 행복한 면도 있다.
그러나 어딘지 사회의 흐름 속에서 떠있는 기름 같다. 적막감은 숨길 수 없다.
유엔 통계를 보면 세계 인구는 42억. 이 가운데 60세 이상 노인인구는 3억 8천 5백여만 명으로 거의 10%. 43년 후인 2025년엔 노인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20%가 될 것이라는 추산.
이때가 되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60세 이상의 노인이 15세 미만의 소년인구를 넘게 된다. 인구 구조상 이것은 일대「변혁」에 비교된다.
우리 나라의 노인인구(60세 이상)는 아직 전체인구의 3·8%수준. 선진국의 3분의1. 그러나 60년대와 비교하면 2배로 늘었다. 연평균 실수증가율은 인구증가율(1·4%)보다 훨씬 높은 3·7%. 2000연대 초는 6%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학자들은 선진국형 인구구조를「종형」으로 비교한다. 종을 세워 놓은 모양으로 신생아에서 초로까지의 인구구성이 비슷하다.
후진국형은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 놓은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 나라 인구 구조도 차차 종형을 닮아가고 있다.
노인문제에서 선진국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노인의 소재. 요즘은 자식들과의 별거가 늘어나는 경향이지만, 일각에선 회의론도 일고 있다. 역시 동양적 가정에의 향수랄까, 미풍에의 동경심리다.
어떤 사람들은 동거가 어려우면 같은 지붕 아래서 살되, 살림은 따로 하는 분거의 아이디어도 낸다. 이웃에 떨어져 사는 접거, 같은 단지에 사는 산거도 있다.
어느 쪽이든 구미식은 아니다. 역시 동양엔 아직도 인간적인 훈기가 남아 있다 고나 할까.
요즘 오스트리아 빈의 훔후부르크 궁전에선 세계 1백 2개국 대표들이 모여 유엔 세계노인회의라는 것을 열고 있다. 결론은 두고보아야 하지만 노인의 얼굴 아닌 마음속의 주름살을 어떻게 펴느냐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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