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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패는 신뢰확보가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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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의 경영전문지「월」(Will·중앙공론사 발행) 최근호는 세계 경제 속의 한국경제의 임상진단과 처방에 관한 한일 이코노미스트의 좌담회롤 실었다.
한국 측에서는 박봉환 증권감독원장(사회)과 조순 서울대 교수, 일본에서는「김삼구웅」일본 경제연구센터 이사장,「반전경부」 명고옥대 교수,「죽내굉」일본 장기신용은행 취체역 조사부강등이 참석했다. 그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주>
▲박봉환=80년대에 접어들면서 장기침체 국면으로 빠져드는 세계경제를 두고 일부에서는 대공황까지 우려하고 있다. 늦어도 금년 하반기부터는 세계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던 전망이 최근 들어 다시 비관론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세계 경제전망부터 풀어나가 보자.
▲김삼=각국이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결과 상당한 개선이 있었던 반면 지나치게 자국중심의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하는 등 국제적인 경제협력문제가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러나 금년 하반기에는 세계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해 내년에는 좀더 밝아질 것으로 본다.
▲죽내=나는 내년이 돼도 세계경제는 조금밖에 밝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싶다.
물론 석유 값 인상의 압력은 많이 약화되었으나 그 후유증은 여전히 심각하다. 세계경제는 60년대 이후 고도성장과정에서 너무 비대했다. 군살을 빼고 석유파동의 충격을 흡수하는데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반전=경기회복을 주도할 스폰서가 없다. 미국이 맡아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기대를 걸 처지가 못된다. 따라서 회복된다해도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다.
▲조순=동감이다. 선진국 모두가 생산성 저하로 고민하고 있고 석유파동의 후유증까지 겹쳐 저 성장 추세는 불가피한 일이다.
미국이 소위 레이거노믹스를 내세워 활력재생을 기대하고 있으나 결국 재정적자의 확대와 고금리의 이중고에 빠져있다. 근본적으로 재정정책과 금융정책 상호간에 어떤 이론적인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
▲박봉환=한국경제도 80년대로 접어들면서 마이너스 내지 저 성장의 시련을 겪고있다. 물가는 어느 정도 진정되고 있으나 경기는 불황을 헤매고 있다.
이처럼 20년간의 고도성장이 늪에 빠진 근본이유가 무엇인가.
▲죽내=부족한 국내저축에도 불구하고 수출증대를 통해 대외신용을 높여, 이를 바탕으로 외자를 끌어들여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수출신장의 요체는 상품의 경쟁력 덕분이 아니라 싸고 양질의 노동력에 의한 것이었다.
그 결과 기업의 생산성 제고나 합리화 노력이 채 자리잡기도 전에 어정쩡한 상태에서 80년대를 맞은 것이다.
따라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전환이 당면과제라고 생각한다.
▲조순=한국민의 잠재역량으로 볼 때 장기적으로는 밝은 장래를 확신한다. 그리나 과거 20년 고도성장 속에서 여러 부문의 불균형이 생겨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기업의 급속한 수익성 악화와 부채 증가 속에 경제전반에 걸쳐 체질이 허약해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책도 이런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가안정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물가안정만으로 허약해진 체질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재정·금융의 긴축으로 경제체질을 강화하는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박봉환=정책이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곤란한 일이다.
가령 물가안정만 하더라도 그것이 중요한 변수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유일·최고의 변수는 아니다.
▲김삼=저속성장이 너무 계속되면 고용문제가 심각해지고 기업의 투자의욕도 꺾이게 된다. 따라서 물가가 안정기미를 보이면 그 다음에는 경기를 살리기 위한 정책수단이 강구되어야한다.
수출을 위해 환율을 올리거나, 내수를 위해 금리를 내린다는 것 등은 모두 인위적인 정책수단들이어서 한계에 부닥치게 마련이다.
일본의 경우 경기부양을 위해 공공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그래도 워낙 민간저축이 든든하니까 정부가 돈을 많이 끌어쓴다고 해서 민간부문에 돈이 마를 염려는 없다. 그러나 한국 역시 이런 식으로 할 경우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박봉환=한국경제정도의 발전을 이룩한 나라는 많아도 선진공업사회로 한 단계 뛰어 오른 나라는 많지 않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국도 아직 선진공업사회는 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정부의 경제정책도 이 같은 전제에서 출발해야하며 기본적인 정책목표는 성장자제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이다.
특히 최근 들어 민간주도형 경제운용이 유행처럼 자주 거론되고 있으나 그렇다고 무작정 시장원리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요즈음 같은 복잡·고도화된 사회에서「애덤·스미드」적인 자율조정기능이 얼마나 효율적일지 의문이다.
▲김삼=어느 나라고 국민경제를 교과서식으로 운용할 수는 없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정부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단지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건제되어야한다.
일본의 경우 경제계획의 수립과정에 각계 각층의 많은 국민들이 참여한다. 이것이 곧 국민총화다.
▲반전=세론을 형성하는데는 국민들의 질이 문제인데 이점에 있어 한국경제는 매우 유망하다. 일본의 춘투가 바로 세론형성의 단적인 예다.
춘투란 단순한 임금인상투쟁의 차원이 아니라 노조 측에서도 조차 전체 국가경제적인 차원까지 고려에 넣고서 벌이는 임금인상요구 캠페인이다. 이미 어떤 체감을 전제로 하고있는 것이다.
▲조순=정부와 기업의 분업체제가 확립되어야한다.
경부는 객관적인 게임룰을 세우고 비전과 우선 순위를 제시해주는 한편 기업들은 여기에 맞추어 스스로의 의사결정에 따라 투자하는 분위기가 되어야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인은 사회의 리더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박봉환=기업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이 강조되고있긴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곤란하다. 기업의 1차 적인 책임은 이윤추구를 통해 세금을 많이 내고 일자리를 많이 제공하며 좋은 제품을 값싸게 생산해서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다. 기업은 이윤동기에 의해 작동한다.
따라서 기업인들에게 지나치게 윤리성을 강조하거나 기업의 이윤추구를 사회악 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며 변화하는 사회요구에 충분히 부응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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