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통·플래스틱 통에 만발한 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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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올들어 최고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 급하게 주민들록등본이 필요하다는 그이의 전화를 받고 짜증스럽게 문울 나섰다. 좁다란 골목길을 돌아돌아 작은 도로로 접어드는 순간, 『어머! 어쩜,저럴 수가!』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발하고 발걸음믈 멈추었다.
작은 도로 옆에 있는 초라한 집에는 본래 1,2,3으로 번호를 매긴 방이 3개 있었다. 각방마다 다른 가구가 살고 있었다.
출입구률 열면 신발만 벗어 놓을만한 공간이 그들에게는 부엌이며 바로 방문이었다.
그중 1번에 살고 있는 집에 꽃을 심을 곳이라고는 찾아보려야 볼 수 없는 곳에 꽃이 피어 있었다.
아무리 내가 머리를 짜낸다고 해도 꽃커녕은 항아리 하나 놓을 곳이 없는 곳인데, 출입구를 열면 바로 도로이고, 출입문을 활짝 열면 옆집 문과 서로 만나는 그런 곳에 내 상상을 뛰어 넘은 여러가지 꽃과 작은 잎들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고 난 남편의 급한목소리도 잊은채 그곳에 그렇게 서 있었다.
우리같으면 못쓰고 버리는 프라이팬에 구명을 내 꽃을 심어 못에 걸고, 출입문 위에선반을 두즐로 매어 작은 선인장과 이름모룰 꽃들이 분유통·플래스틱용기등에 담겨 조그마한 입들을 소담스럽게 벌리고 있었다.
그뿐이랴! 출입문 바로 옆으로 플래스틱 물통에는 한가닥의 덩굴장미가 출입문 주위로부터 선반을 이은 끝까지 연결되어 얼마전 어여뽄 몇송이의 꽃이 핀 gms적이 있었다.
난 그 모든 것들을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높은 담장으로 뻗어간 갈 다듬어진 장미보다 한가닥이지만 이 작은 출입문을 감싸준 그 가련한 장미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선반 위에 올라앉아 지나가는 이름모를 이들에게 인사하는 그 작은 앞들은 어느 부잣집 정원에 있는 값비싼 꽃보다 몇천배, 몇만배 더 귀하고 사랑스러웠다.
한 순간에 더 큰 것을 얻어보고자 하는 저 검고 큰손들이 판치는 이 세상에 이렇게 작은 손이지만 큰 가슴을 지고 살아가고있는 이 집의 람들은 어떤분들일까. 같으면 이런 생활을 짜증스럽고 고달프게 보내고 있었을텐데…. 꽃이 무어란 말인가! 빨랫즐 하나 제대로 맬 곳이 없는 것을 원망하고 비관하며 상았으리라.
지금도 크지는 않지만 내 집이라도 가지고있는 나지만, 그래도 마당이 쫍다고 꽃나무하나 변변히 심지 않고 지내는 나에게 그집사람들은 너무나도 큰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물질의 여유는 없지만 우리가 못가진 마음의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나는 순간에 일어나리라는 기회주의가 아닌 순리대로, 댓가대로 살아가는 저들에게서 아름다운 보석을 본 느낌이다. 다음 기회에는 그집 아낙네라도 만나 이 흐뭇한 마음을 전하고 그와 벗할 것을 다짐해본다.

<서울성북구석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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