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치매, 방치 마세요" 치매 전문 서울시립 '서북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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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노인들이 퍼즐 맞추기를 하며 인지능력을 키우고 있다. 양영석 인턴기자

2년 전 어머니 김금례(67.가명)씨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자 아들 다섯은 한 달씩 돌아가며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정했다. 한 곳에서 살지 못해 늘 불안했던 김씨의 증세는 점점 심해졌고 형제들 사이도 틀어졌다. 김씨가 방금 식사한 사실을 잊고 계속 밥상을 차려오라며 화를 내는 바람에 큰 며느리는 숨어서 몰래 밥을 먹었다. 또 김씨가 혼자 잠들지 못해 아들 내외는 한동안 각방을 써야했다. 아들은 자꾸 집을 나가려고 하는 김씨가 걱정돼 방에 자물쇠를 달았다.

그러나 현재 김씨는 손자들을 알아보고 이름도 부를 정도로 좋아졌다.지난해 5월 서울시립 서북병원의 치매 클리닉을 찾은 덕분이다. 증세가 심해 병원에 입원한 김씨는 음악치료.미술치료 등을 통해 규칙적인 활동을 하고 같은 병동에 있는 노인들과 어울리며 사회성도 회복했다.

60여 년간 결핵 전문병원이었던 서대문병원이 지난해 4월 치매 등 노인성 질환 관리기관으로 '주종목'을 바꾸고 올해 6월 서울시립 서북병원으로 이름도 고쳤다.서울시 은평구 역촌2동에 위치한 서북병원은 현재 서울시에서 직영하는 유일한 노인전문병원으로 노인.치매환자 3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25일 서북병원의 체조 치료실에서는 20여 명의 노인들이 주먹으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뚝딱뚝딱 합시다. 방망이질을 합시다" 라는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었다. 간밤에 "집에 보내달라"며 떼를 쓰고 울면서 짐을 챙겼던 김성례(75) 할머니도 밝은 얼굴로 '방망이질' 노래를 불렀다. 병원의 이은아 신경과 과장은 "규칙적인 활동이 치매 노인들의 뇌기능을 활성화한다"며 "노래와 함께 율동을 하면 치매환자들이 밝아진다"고 말했다. 체조를 마친 김성례 할머니는 점심 식사 후 알록달록한 색의 퍼즐을 맞추고 오후에는 깡통으로 된 볼링 게임을 했다.

서북병원 이준영 원장은 "치매를 안 낫는 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치매 환자를 단지 수용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병원의 특징을 설명한다. 가족들의 손을 덜어주고 약물 치료에만 의존하는 요양원과 차별화하기 위해 체조.게임.창작활동 등이 포함된 '잘 돌봄 프로그램'을 마련,치매노인들의 신체활동을 증가시키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도록 하면서 사회성도 회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의사.치료사.신경심리사를 두어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들의 가장 큰 어려움이 간병인 비용이라는 점을 고려해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위한 무료 간병인제와 공동간병인제를 도입했다. 치매 환자 5명을 함께 돌보는 공동간병인제를 이용하면 간병비가 한 달에 약 60만원으로 민간시설보다 50만원가량 덜 든다.

조영수 진료부장은 "치매 노인을 병원에 맡기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 많지만 전문적인 기관을 믿을 필요가 있다"며 "부모님의 행동에 변화가 보이면 단지 연세 탓으로 돌리지 말고 빨리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의 02-3156-3000

김호정 기자, 김봄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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