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인 150여명 '통일문학의 새벽' 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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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평양 인민문화궁전 대회의실에서 무릎을 맞댄남과 북의 문인 200여 명은 ‘6·15 민족문학인협회’를 꾸리고 ‘6·15 통일문학상’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사진 앞 왼쪽부터 한 사람 건너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 소설가 김훈, 두 사람 건너 원로 시인 이기형씨.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통일문학의 신새벽을 열어젖히는 남북 문인들의 함성이 백두산 천지 위로 메아리쳤다.

23일 오전 5시, 백두산 장군봉 아래 개활지에 남과 북, 해외 문인 등 150여 명이 모였다.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회의'(이하 남북작가대회)의 나흘째 행사인 '통일문학의 새벽'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사회는 북쪽 시인 리호근 씨와 남쪽 소설가 은희경씨가 함께 보았다. 참가자는 남쪽에서 고은.신경림.백낙청. 황석영씨 등 100여 명, 북쪽에서 홍석중.오영재.남대현.김병훈씨 등 20여 명과 미국 동포작가 이언호씨와 일본의 김학렬. 김정수씨 등이다.

행사는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과 장해명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이 20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 본대회에서 채택된 공동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고은 시인이 지난 밤 백두산 삼지연 베개봉 호텔에서 쓴 시'다시 백두산에서'를 낭독했다. 특유의 열정적인 낭독이 이어지는 동안 참가자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동터오는 해를 응시했다. 이어 소설 '황진이'의 북쪽작가 홍석중씨가 마이크 앞에 섰다. 홍씨는 "사람이 마음을 모으면 하늘을 이긴다. 우리는 6.15 공동선언으로 모아졌다. 조국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백두산에 올라 조국통일 만세라는 말을 다시 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쪽 시인 박세옥씨와 남쪽 소설가 송기숙씨, 일본에서 온 동포평론가 김학렬씨, 그리고 북쪽의 여성시인 박경심씨와 남쪽 시인 안도현씨, 북쪽 소설가 남대현씨와 남쪽 소설가 현기영씨가 나와 각자의 시를 읽거나 소감을 밝혔다.

남대현씨는 "지맥은 하나지만 혈맥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때와 장소를 골랐다. 우리가 마음을 모으면 겨레가 하나로 뭉친다"고 강조했다.

소설 '빨치산의 딸' 작가 정지아씨가 고 김남주 시인의 시 '조국은 하나다'를 낭독한 다음에는 북쪽 시인 오영재 씨가 나와 자신의 시 '잡은 손 더 굳게 잡읍시다'를 낭송했다.

"열다섯살에 다도해 기슭을 떠나/평양에서 일흔이 된 이 몸/그대들의 손을 잡으며/통일을 애타게 부르며 부르며 떠난/수천수만의 피 더운 손도 함께 잡은 듯/조종의 산 백두산에 맹세하며/잡은 손입니다/더 굳게 잡읍시다/온 민족이 이렇게 손 잡고 갑시다."

참가자들은 "백두산 만세" "민족문학 만세"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며 헤어졌다.

한편 이번 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자인 남쪽의 이기형(89) 시인은 월북 시인 오영재 씨와 부둥켜 안고는 눈물바다를 이뤄 눈길을 끌었다. 천지에 도착하면서부터 울음을 보인 이씨는 오씨를 만나자 "어머니를 북에 두고 내려온 나와 어머니를 남에 두고 올라온 당신은 같은 처지"라며 끌어안았고, 이에 오씨 역시 눈물로 답했다.

평양.백두산= 공동취재단.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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