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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사기꾼이 노리는 가장 손쉬운 타깃 … 혹시 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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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잘 속는 사람의 심리코드
김영헌 지음
웅진서가, 304쪽
1만4800원

‘저 민정인데요, 예전에 통화한… 잘 모르시겠어요? 그럼 사진을 하나 보내드릴까요?’

 갑자기 날아든 이 한 통의 문자메시지에 무려 40만 명이 확인 버튼을 눌렀다. 한 달 뒤, 버튼을 누른 사람들의 청구서에는 정보이용료 2990원이 찍혔고, 문자를 보낸 사기꾼은 이 메시지 하나로 10억 원이 넘는 거금을 챙겼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 3000원 미만 소액 결제의 경우 인증번호가 필요 없다는 허점을 이용한 범죄였다.

 주목할 것은 이 문자에 ‘낚인’ 사람 중에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20년 동안 검찰 수사관으로 일해온 저자는 이를 가리켜 “남자들의 잠재된 욕망을 미끼로 삼은 속임수 사례”라고 말한다.

 수많은 사기 범죄의 수법과 전략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지은이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속고 속아 넘어가는 관계의 심리작용을 분석하면 마치 ‘원칙’처럼 작용하는 3가지 심리 코드가 보인다는 것이다. 욕망과 신뢰, 불안이다.

 첫째,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은 사기꾼들의 가장 쉬운 타깃이다. 경품 이벤트에서 수억 원짜리 아파트 경품에 당첨됐다며 제세공과금 100만 원을 내라는 말을 고스란히 믿고 입금하는 사람이 그런 예다. 돈이 궁할수록 잘 속는다. 대출을 빙자한 보이스 피싱 사기에서도 사기꾼들은 과거에 한 번쯤 대출을 신청했다가 거절 당한 사람을 노렸다. 잘 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와의 로맨스를 꿈꾸는 여성에게는 ‘백마 탄 사기꾼’이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둘째,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유대감·친근감을 이용해 풀어진 경계심을 파고드는 전략이다. 동네 주택가에 제품 홍보관을 차리고 외로운 노인이나 주부에게 사은품을 나눠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고가 제품을 강매하는 사기 범죄가 그런 예다. 이런 경우 노인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오히려 사기꾼이 아닌 수사관에게 역정을 낸다고 한다. 연락이 뜸한 자식들보다 판매업자에게 정을 더 느끼기 때문이다.

 셋째, 사기꾼은 불안한 영혼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불안할 때 조상님 탓과 같은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에 더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속는지를 들춰 보이니 우리 시대의 한없이 허약한 민낯이 보인다. 대박 욕망에 휩쓸리고 외롭고 미래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는 모습이다. 수사 현장 이야기와 과학적인 연구 데이터를 곁들여 쓴 ‘한국사회 정신 보고서’가 진지하게 묻는다. 당신께선 정말 괜찮으시냐고.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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