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아 나아가 보니…]
수주 (변영노) 가 기다리던 빗소리다.
심훈의 소설『상록수』에도 빗소리가 나온다..『누에가 뽕잎을 써는 것처럼 부시럭 부시럭』 하는 빗소리,『창호지에 굵은 모래를 끼얹는 듯』휘 뿌리는 빗소리. 어느 쪽이든 상쾌한 비다.
이상의 비 (우) 는 『고무신 신은 사람처럼』소리가 없다.「눈물보다도 고요합니다』그의 비는 차라리 센티멘털리즘의 극치.
역시 호쾌한 비는 중국의 문장가 김성한의 『서상기』 주역에서 쏟아진다. 그는 『행복한 한때 33절』을 엮으면서 첫 번째로 『처마 끝에서 폭포처럼 퍼붓는 빗소리』를 꼽았다.
때는 6월 어느 더운 날. 돗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으려는데 땀이 흐르는 얼굴에 파리 떼가 달려든다. 그 심정은 달리 묘사가 없어도. 짐작된다.
이 순간, 『싸움터로 향하는 대군처럼 당당한 기세로 몰려 온 검은 구름』이 비를 쏟아낸다.『아, 이 얼마나 유쾌한 일이냐!】김성한의 쾌재.
기록을 보면 우리 나라의 여름 가뭄은 의외로 잣다. 대구의 경우 1930년부터 l970년 사이에 여름 가뭄이 19일 이상 계속된 해는 11번이나 된다. 목포도 역시 마찬가지. 가뭄이 든 해도지역마다 다르다.
기상학자들의 통계자료도 있다.
서울의 경우 57년 동안 가뭄이 발생한 회수는 11회. 평균 5·2 년에 한 차례씩이다. 그러나 목포와 같은 지방은 2년에 한번 씩. 63년 동안 32회. 부산은 63년 동안 19회. 3·3년마다 가뭄을 맞는 셈이다.
연중 20일 이상 비가 오지 않는 예는 남부 동해안 지방이 10년에 9회, 중 남부 서해안지방이 10년에 4회 정도.
그러나 많은 경우는 겨울 가뭄이다. 농사에 직접 영향이 없다. 어려운 것은 한여름의 가뭄이다. 우리 나라처럼 우순 풍조가 절실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특히 기후와 국민성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근면하고 참을성이 남달리 강한 것은 각박한 기후 탓인지도 모른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고, 비바람이 고르지 못하다.
이런 천후는 우리에게 극복의 의지를 가르쳐 준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기후의 도전을 덜 받는 남국형의 민족보다는 자연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북국형의 민족이 훨씬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요즘의 기상을 보면 지구인들이 남국적인 낙천적 기질을 가질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세계 기상기구 (WMO) 까지도 「기상」이란 말 앞에「이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지난 25년 동안의 평균치에서 벗어나는 현상』
25년은커녕 한해가 멀게 우리의 기후환경은「이상」해지고 있는 것 같다.
고무신 신고 오는 「소리 없는 비」라도 한 자락 쏟아졌으면 좋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