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55. 미국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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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웃으면 복이와요'의 400회 특집 프로그램에서 '개다리 춤'을 추고 있는 필자.

삼룡사와의 부도는 내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아내와 헤어지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어수선한 건 나뿐 아니라 당시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1979년 말에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정국 역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사람들은 '3김씨 중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나는 그 중에서 김종필씨를 지지했다. 나 뿐만 아니었다. 당시 연예인들은 대부분이 그랬다. 딱히 정치적 소신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당시 3김씨 중에선 김종필씨가 연예계와 문화계에 인맥이 많았고 조예도 깊었다. 그래서 연예인들의 생각은 비슷했다. 만약 김종필 씨가 대통령이 되면 연예계에 여러모로 득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아주 열심히 그를 지지했다.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해 공개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다녔다.

그런데 신군부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연예 활동 정지'처분을 내렸다. 방송 출연뿐만 아니었다. 밤무대와 극장 등 모든 연예 활동을 중단하라는 조치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종필씨 지지가 그들에겐 대단히 불쾌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연예인에게 '활동 정지'처분은 사형선고와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활로와 정신적인 활로를 모두 봉쇄하는 셈이었다.

게다가 신군부는 권력을 장악하자 사정없이 칼을 휘둘렀다.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삼청교육대까지 만들었다. 사회적으로 명망있고, 멀쩡하던 사람들도 끌려갔다. 나는 졸지에 미풍양속을 해치는 불건전한 인물로 분류됐다. 보안사에서 몇 차례나 전화가 왔다. 그리고 협박 아닌 협박을 가했다. 삼룡사와 부도 만으로도 힘겨운데 연예활동 정지까지…. 정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때 누군가 미국행을 권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딱 석 달만 갔다오자. 그럼 그때는 정리가 돼 있겠지. 사회도 안정을 찾을 것이고, 활동 정지 처분도 풀리겠지.' 마침 캐나다를 경유하는 미주 공연 단체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비자를 쉽게 발급받았다. 그래서 비행기 타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출국 이틀 전에 우연히 후배 가수 최희준을 만났다. "미국으로 가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미국 돈을 건넸다. 1달러70센트였다.

1980년 12월 27일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을 떠나지만 미국에선 어떻게 지내야 하나.' 일단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연예인들에게 연락을 하는 수밖에. 물론 사전에 그들에게 연락을 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가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가족과 돈, 명예까지 모두 잃고 낯선 이국땅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내 손은 바지 주머니 속에 있었다. 그리고 전 재산인 1달러70센트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비행기 창 밖으로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저 푸른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심정이었다.

배삼룡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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