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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비상경제조치」|경제활성화대책…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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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대로 두면 시들어 버릴 것 같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비상대처다. 사채동결 없는 제2의 8·3조처라고 할 수 있다. 기업에 대한 파격적 지원을 통해 경제의 기사회생을 기대하고 있다. 그 동안 몇 차례 경기활성화 시책을 써봐도 별 효험이 없는 것 같으니 아예 충격요법으로 쇼크를 주기로 한 모양이다. 더 이상의 약이 없는 고단위 투약이다. 조처내용이 상식을 초월한 것들이어서 가장 큰 수혜자인 기업들도 놀라고 있다.
지금도 국제수준보다 낮은 금리를 4%나 추가로 내리면서 금리체계를 싹 바꾼 것이나 법인세율을 일시에 20%선으로 인하하는 것, 또 시은들을 바겐세일 하듯 몽땅 서둘러 민영화하는 것 등은 경제정책차원이상의 발상이다.
그만큼 대담하고 기발하다.
이제까지 해온 정책의 연장종이 아닌 새로운 발상에 바탕을 둔 정치적 결단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조처는 경제부처이상의 차원에서 결정, 추진된 것이며 앞으로의 후속조치도 새롭고 참신한 것들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토록 파격적인 조치가 나왔다는 것은 정부가 경제현황용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도 된다.
혁명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상태라고 본 것이다.
지표 상으로는 경제가 괜찮은 것 같으나 속은 말이 아닐 정도다. 특히 경제의 핵인 기업은 연4년째의 불황으로 대부분이 부실 권에 있다. 최근의 중동 경기냉각과 사채파동 등으로 신용공황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경제에 대해 비교적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던 정부가 벼락같이 엄청난 조치를 취한 것은 확실히 「코페르니쿠스 적 선회」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김준성 부총리의 지방순방이나 여당 쪽으로부터 긴급호소 등이 이런 정책선회에 큰 작용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계에서도 점차 시들어 가는 경제에 어떤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건의해왔지만 이 정도의 것은 엄두도 못 냈다. 기대보다 훨씬 많이 주어 오히려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정부에선 찔끔 질끔 하여 생색도, 효과도 안 나게 하느니 보다 한꺼번에 뭉텅 주어버린다는 생각인 것 같다. 정책실기를 커버하기 위한 물량공세의 뜻도 있다.
이런 대담한 조처를 쓸 수 있는 것은 물가안정과 국제수지의 악화개선에 힘입은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물가안정이 호황 때도 계속 될 수 있는 단단한 것이며 국제수지개선이 국제경쟁력의 기반 위에서 이룩된 것 인가엔 의문이 있다.
또 이번의 비상조처가 그 동안 경제정책의 바탕을 이뤄온 「한자리수의 물가」와 어떻게 연결되고 또 조화를 이룰지 관심거리다.
어차피 돈은 많이 풀리게 되어있다. 멸세 등에 의한 재정적자 확대와 금융지원강화는 통화인플레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금리인하도 충격이지만 금리체계의 전면개편은 더 충격적이다.
이것이 기존 신용질서와 저축무드 등에 나쁜 영향이 안 가도록 세심한 보완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연8%의 예금금리로선 저축을 꺼려할 것이며 연10%의 대출금리로선 누구나 은행돈을 빌리려 할 것이다.
시은 민영화의 촉진은 이제까지 추진되어온 금융자율화의 일환인 것 같은데 난마같이 얽혀있는 현실과의 조화가 채권을 잔뜩 짊어지고 있고 앞으로 모든 부담이 금융에 몰리게되어 있는데 명실상부한 민영화를 어떻게 할지 관심거리다. 사실 제대로 성한 은행이 하나도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며 워낙 부실기업에 크게 몰려서 큰 해외건설업체 하나만 쓰러져도 은행이 휘청하게 된다.
『민영화했으니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정부에서 말할 처지가 못된다. 당장 해외에서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비상조치를 경제계, 특히 기업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얼마나 호응하느냐하는 점이다.
비상조처의 성패도 거기에 달렸다. 이번 조처로 기업엔 파격적인 혜택이 돌아가는데 그것만으로 기업의 어려움이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의 어려움이나 의욕현상은 경제적 요인 외에도 많은 것이 있다.
어딘가 불안해하고 자신 없어 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전엔 경제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경제가 1차 오일쇼크 때보다 이번이 훨씬 어렵고 후유증이 큰 것은 1차 땐 충만했던 자신감과 의욕들이 이번엔 많이 죽은데도 큰 원인이 있다.
파격적인 경제적 지원과 아울러 국민들의 마음을 풀어줄 파격적 경제외적 조처도 병행돼야할 것이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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