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의 임의성"이 또 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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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여대생 박상은양(22)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구속 기소됐던 정재파 피고인(21)에게 무기징역이 구형되었다.
경찰이 진범으로 구속했던 장경수군이 무혐의로 풀려나고 같은 해외연수생이었던 정군이 범인으로 구속되는 역전극을 연출했던 이 사건은 이제 법대(법대)의 유·무죄 심판만이 남았다.
그동안 8차례의 공판과정에서 42명의 증인이 출두했지만 검찰과 변호인측은 서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이 사건은 자백의 임의성이 무참히 깨어진 고숙종씨에 대한 2심 무죄판결이 난지 얼마 안돼 또다시 자백의 임의성 시비가 걸려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끌고있다.
검찰은 ▲정 피고인의 자백은 고숙종씨 경우와는 달라 임의성과 논리적 타당성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보강증거로 ▲승용차의 시트 및 베개커버의 혈흔 ▲거짓말탐지기 양상반응 ▲알리바이 ▲사건당일 목격자 등을 들고나와 유죄를 자신하고 있다.
이에 반해 변호인측은 ▲직접증거가 없고 ▲자백은 강요된 상태에서 암시에 의해 행해진 것으로 임의성이 없으며 ▲사건당일 집에 있었다는 알리바이 등을 들어 무죄라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공관에서 팽팽히 맞섰던 검찰과 변호인간의 논점을 정리해본다.

<자백의 임의성·논리성>
검찰은 정 피고인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행한 자백에 의해 범행전모가 밝혀졌다며 자백이상 정확한 증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 피고인이 검찰에서 자백한 살해과정, 드라이브 코스, 상은양의 샌들모양, 지갑크기 등은 『범인이 아니고서는 밝힐 수 없는 내용』이며 이러한 사실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임의로 자백을 했다고 논고에서 주장했다.
또 정 피고인은 검찰이 묻지도 않았는데 ▲상은양 오빠집 전화번호를 알게된 경위 ▲살해 때 승용차 안전벨트를 사용한 사실 ▲남산까지 드라이브한 사실 등을 진술한 점을 들어 자백의 임의성과 논리적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변호인측은 정 피고인이 60여시간동안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위협·회유·설득과 끈질긴 암시에 의해 허위 자백한 것으로 임의성이 전혀 없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범행 후 귀가과정 진술이 처음엔 담을 넘어 들어갔다고 했다가 전후정황에 어긋나자 어머니가 열어줬다고 고치는 등 자백내용이 여러번 번복돼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한 흔적을 남겼다고 했다.
아울러 ▲범행 다음날 새벽 사건은폐를 위해 샌들을 숨긴다면서 오히려 발견되기 쉬운 대로변에 버렸다고 한 점 ▲살해 후 바로 사체를 유기할 인조석더미를 발견했다고 했으나 깜깜했고 경황이 없을 상황에서 과연 인조석더미를 찾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점 등을 들어 자백의 논리성을 부인했다.

<시트 및 베개커버 혈흔>
검찰은 시트커버에서 검출된 상은양의 혈액형과 같은 O형의 혈흔을 포니승용차 안 살해의 결정적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시트커버의 혈흔분포도 및 크기 형태가 상은양이 입었던 T셔츠·청바지에서 발견된 혈흔과 유사할 뿐더러 나중에 참고에서 발견된 베개커버의 혈흔분포도 및 형태와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측은 시트커버에서 혈흔이 나온 것은 인정하지만 피고인의 숙부와 외할머니가 O형이며 기관지염을 앓고있어 이들이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기침이나 침을 뱉을 경우 피가 섞여나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들어 『혈흔이 상은양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
변호인측은 또 베개커버 2개 모두에서 혈흔이 발견된 것에 대해 조수석에는 베개를 꽂는 구멍이 없는 점으로 미뤄 차 속 아닌 다른 곳에서 피가 묻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짓말탐지기>
검찰은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 정 피고인이 상은양 오빠집 전화번호에서는 양성반응을, 상은양의 T셔츠부분에서는 양성반응으로 간주되는 검사방해언동(검사방해언동)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변호인측은 T셔츠가 찢어져있는 『특색』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고 전화번호 역시 검사조건을 안 갖췄다고 맞섰다.

<사건당일 목격자>
검찰은 사건당일 삼정장여관 앞에서 피고인을 보았다는 목격자 중년남녀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여관에 투숙하려 할 때 한 청년이 인조석더미에 비스듬히 누워 얼굴을 돌리고있어 하의와 「랜드로바」신발만을 봤다고 증언했다. 사건당시 정 피고인은 동일한 하의와 신발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변호인측은 목격자들이 청년의 얼굴 및 상체부분을 보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목격자로서의 진술가치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알리바이>
검찰은 피고인이 사건당일 밤 학교에서 귀가 후 어머니에게 외출허락을 받고 9시30분쯤 장미아파트 숙부집에 가 숙모 장두경씨(32)에게 전화를 부탁, 장경수군과 만나고 들어온 상은양을 불러내 드라이브를 하던 중 삼성동 삼정장여관 차고에서 상은양을 살해, 인근에 암장했다는 것.
특히 검찰은 어머니 이을순씨(46)가 사건당일 밤 피고인의 외출허락과 귀가 때 문을 열어주었다고 진술한 것을 결정적 정황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한 변호인측은 사건당일 피고인은 학교에서 귀가 후 줄곧 집에 있었으며 이러한 자백은 유도심문에 의한 것이라고 반복 주장했다. 어머니 이씨가 정 피고인의 자백과 일치하는 자술서를 쓴 것은 『검찰이 자술서를 쓰면 아들을 만나게 해준다』는 바람에 아무 생각없이 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범행동기>
검찰은 정 피고인이 해외연수 때 자신과 먼저 친했던 상은양이 장경수군과 가까와져 시기심과 미련을 품어오던 중 사건당일 상은양을 만나 연정을 표시하려다 강한 반발·모욕, 구타를 당해 순간적으로 격분한데 있다고 논고했다.
그러나 변호인측은 정 피고인이 평소 친구관계가 원만하고 상은양에 대해 열등감이 생길 하등의 이유가 없으며 뺨을 맞았다고 해서 웃으면 웃었지 살해할 이유까지야 없다며 검찰의 살해동기가 불투명하다고 변론했다.

<치흔>
변호인측은 또 경찰수사당시 결정적 증거였던 치흔이 생긴 과정 및 원인에 대해 검찰측이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으나 치흔은 박 양이 집을 나간 후 발생한 것으로 당초 정 피고인의 치열과 대조한 결과 일치하지 않았던 것은 정 피고인의 무죄입증에 좋은 증거라고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치흔은 피고인과 만나기 전에 생긴 것이며 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일축했다. <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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