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안」처리견해 상반 청와대 회담 그 후의 정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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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16 청와대회담에서 제기된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수렴하고 소화하느냐가 정가의 관심거리다.
회담의 합의사항, 논의사항, 제시된 기본방향 등을 기점으로 삼아 이제부터 문제를 풀고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인식에 있어서는 관·정이 일치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무슨 일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입장에 따라 역점이 다르고 우선 순위와 완급에 대한 감각도 같지 않다.
청와대회담 후 정부가 당장 착수할 일은 회담에서 확인된 정신을 가능한 분야별로 국정의 차원에서 소화하는 일.

<총리참석 여부 거론>
한 관계자는 『회담에서 논의된 사항이 대부분 시간을 두고 검토될 성질의 것』이라며 『그러나 경제부문에 관한 얘기는 상부의 뜻에 따라 곧 민정당과 정부사이에 협의가 있을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회담에서 나온 정치사항도 선거관계법을 제외하고는 현재 모두 국회에 계류 중에 있으므로 정부도 그 내용이나 문제점 등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그런 문제는 우선 정당들이 주도적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다만 정부로서도 제기된 문제들을 검토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내주에 당장 3당대표회담을 열려는 움직임은 너무 조급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행정부로서는 지금까지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해온 체질인데다 이번에는 일부 각료의 거취가 도마 위에 올려졌기 때문인지 가급적 청와대회담을 입에 안 올리려는 듯한 분위기였다.
청와대회담에 앞서 정부일각에서는『총리도 참석할 법하지 않는가』 『행정부로서도 무슨 대책을 올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얘기도 나왔으나 총리주변에서는 총리까지 개각대상에 포함되리라는 설을 의식해서인지 두고 보는 쪽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회담후인 17일 낮에는 유 총리 주재로 안보관계장관 오찬회를 갖고 청와대회담에서 거론된 정치문제들을 일단 짚고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회담을 보는 민정당의 시각은 야당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야당 측이 청와대회담성과를 정치현안에 대한 합의의 시작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반해 민정당 측은 이철희·장영자 사건의 수습책과 정치발전문제는 별개로 보는 입장.
그래서 6·16회담 후 민정당의 자체 분위기도 비교적 가라앉아 있고 이재형 대표위원 진의종 정책위 의장을 중심으로 한 경제대책 논의와 당사무국의 홍보대책 관계회의가 열리는 정도.
후속조치 논의를 위한 3당대표회담에 대해서도 이 대표위원 자신이『언젠가 밥을 한번 같이 먹기로 했다』고 했고, 당직자들은 『엊그제 청와대서 회담하고 또 당장 회담할게 있겠느냐』는 반응들.
국회법 등 정치관계법에 대해서도『아직은 개정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민정당의 변함없는 공식방침이다.
그러나 이 같은 표면적인 평온·냉정과는 달리 민정당도 앞으로 정치현안에 불가불 부딪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 대표위원은 청와대회담으로『민정당이 또 무거운 짐을 지게됐다』면서 정치현안과 시국을 풀어나가는 일에 당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임을 시사.

<과열된 의총 분위기>
또 한 고위 당직자는『꼭 정치현안이 아니더라도 그때그때의 시국 이슈를 거론, 해소해 나가기 위해 3당 대표회담 같은 모임이 당장은 아니라도 앞으로 계속 활용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의 정치의안에 대해서도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속으로 계산은 하고 있는 인상이다.
청와대회담 후에도 민한당의 발언강도는 여전히 높다. 이제는 선거제도개선 등의 논의가 공인을 받았다고 보고 당내에 실무작업 팀을 구성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우선 민한당이 제기할 문제는△국회법 개정안△지자제의 조기실시△언론활성화를 위한 언론기본법개정안 등 이미 국회에 제출해놓고 있는 「정치의안」들.
이들 법안들이 각각 소관상임위에 계류 중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에서 실질적인 심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촉구할 계획이며 민정당도 이제 와서는 이를 종전처럼 전적으로 외면하거나 형식적인 심사에 그칠 수는 없으리라는 게 민한당의 생각이다.
현안문제의 심의착수와 함께 민한당이 가장 야심적으로(?) 추진코자하는 것이「평화적 정권교체의 기반구축」문제.
평화적 정권교체를 사실상 가능케 할 선거제도개선 등을 추진한다는 것인데 이 문제는 체제논쟁의 불씨가 될 우려도 있다.
민한당이 이를 적극 추진하고 3당대표회담 같은데서 정식으로 제기한다면 정국은 과열될 가능성도 있다.
요컨대 민정당이 청와대회담을 「여야협력관계의 심화」로 끌고 갈 생각인데 반해 민한당은 정치현안의「개문」으로 보려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는 내년에 있을 전당대회의 당권경쟁이라는 당내문제 때문에 더 고조되고 있다.
17일 열렸던 의원총회 분위기로도 이런 사정은 짐작이 간다. .
이날 의원들의 발언은 표현방식부터 매우 원색적이고 감정적이어서 듣기가 거북스러울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회담의 후속조치가 채 나오기도 전에 거북스런 얘기가 오가는 건 뭔가 당내에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고 있음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많다.
후속조치를 둘러싸고도 앞으로 이같이 표면적인「양극화현상」은 심해질 전망이어서 당내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내년 1월의 전당대회 서막이 오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최근 들어 신상우 전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한 일부 인사들의 접촉이 눈에 띄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방미중인 한영수 전 정책심의회 의장이 귀국하면 또 다른 움직임이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나돌고 있다.
당권경쟁의 고지선점을 위해 경쟁적으로 「선명성」을 과시하는 분위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도 자처인사 많아>
청와대 회담자체를 두고 국민당은 민한당 보다도 소극적이다.
김종철 총재는 『국민당이 제의한 부분에 대해 준비는 해야겠지만 당분간 정부에 대해 촉구하고 회답을 기다리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민당이 가장 관심을 갖는 대목도 선거제도개선인데 그 방향은 정당법에 보장된 다당제가 현행 1구2인 제의 국회의원 선거법으로는 달성될 수 없으니 이를 고치자는 것.
국민당 역시 이번 회담을 고비로 지금까지 배면에서 모색되고 있던 당권경쟁이 서서히 표면화 할 조짐이다. 장 여인사건 중 도미로 수세에 몰렸던 김총재는 최근 더욱 당무에 열을 올리고 있고 김 총재 부재중 자신의 기반확대에 주력해온 이만섭 부총재도 경북출신의원(5명)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당무회의에서 총재를 사실상 선출하게 되어있는 당헌 때문에 양쪽 모두 당무위원들을 공략대상으로 뛰고있다. 서로 7대5로 승산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중도자처 인사가 많아 어느 편도 안정권 확보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고흥길·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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