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자 '수갑 연행'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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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현직 검사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뒤 수갑이 채워져 경찰서에 연행된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음주운전자 처리에 대한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검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비판과 별도로 경찰관의 수갑 사용과 강제 연행은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는 과잉 대응"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적법한 공권력 행사"라고 맞서고 있다.

◆사건 개요=서울 서초경찰서는 음주운전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서울의 한 지검 박모(35) 검사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최근 밝혔다. 박 검사는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동에서 동료와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적발됐다.

당시 박 검사는 호흡기 측정 결과(혈중 알코올농도 0.137%, 0.10% 이상이면 면허 취소)가 나온 뒤 채혈 측정을 요구해 인근 병원에서 채혈을 했으며, 수갑이 채워져 경찰서로 연행됐다.

박 검사를 연행한 길모 경장은 "'음주 측정과 채혈을 마쳤으니 집에 가겠다'며 10여 분 동안 경찰서로의 동행을 완강히 거부해 어쩔 수 없이 수갑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때 적발한 운전자가 검사인지 몰랐다.

박 검사는 이에 대해 "채혈을 하겠다고 하자 수갑을 채워 경찰차에 싣고 병원으로 갔으며, 채혈을 마친 뒤 다시 수갑을 채웠다"며 "불응할 경우 공무집행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경찰관의 지시에 비교적 순순히 응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채혈 뒤 경찰서로 가지 않겠다고 버텨 처음으로 수갑을 채웠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혈액 검사에서 박 검사의 혈중 알코올농도가 0.146%로 나타나자 16일 운전면허 취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도 박 검사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과잉대응 논란=경찰은 음주운전자를 현행범으로 본다. 임의동행에 불응하고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는 수갑을 사용한 체포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현행범이거나,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범인이 도주할 우려가 있거나,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등 필요한 한도 내에서 수갑.포승 등 경찰 장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음주운전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경찰서에 연행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운전면허증을 제시해 신원을 확인했고, 음주 측정까지 마친 운전자에게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데려가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는 것은 도를 넘은 강압적 조치라는 지적이다. 특히 박 검사 측의 주장대로 채혈 측정을 요구해 병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다면 과잉대응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현행 법상 음주단속 직후 운전자를 경찰서로 연행해 조사해야 한다는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 현행범으로 판단, 연행하는 경찰의 관행이 이어져 온 것이다. 연행할 때는 '현행범'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려야 한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경우는 신원보증인 등을 세우고 나중에 조사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은 '증거 수집'차원에서 경찰서로 연행하고 있다.

한문철 변호사는 "현행범은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 때문에 체포하는 것인데 음주운전자는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측정에 응한 단순 음주운전자를 수갑까지 채워 데려가는 것은 인권 차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교통안전공단 신용균 전문연구원은 "음주운전은 명백한 범법 행위인 만큼 공권력의 정당한 법집행에 대해 신뢰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정강현.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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