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끈질긴 연정 주장 왜?… 실정 책임론서 벗어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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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이 19일 당사에서 열린 특보단 회의에서 자신이 제의한 한나라당과의 연정 논의 활성화 및 정책 공조 문제와 관련해 언급하고 있다. 오른쪽은 배기선 사무총장. [연합]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으로 시작된 여권의 연정 구상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한나라당.민주노동당.민주당 등 야권 전체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연정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이 연정에 대해 보다 구체적 구상을 밝힐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논란은 여름 정국을 계속 달굴 것 같다.

연정은 논의 결과에 따라선 정치 구조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문제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배기선 사무총장이 19일 연정의 구체적 내용과 목적.대상을 소상히 밝힌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 "목표는 결국 한나라당"=연정의 최종 대상이 한나라당임이 분명해졌다. 문희상 의장은 "연정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제1야당과 해야 한다"며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 첫 타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총리직을 제의하자거나, 야당에 각료 30% 지명권을 주자는 등의 주장은 이 같은 입장과 맥이 닿아 있다.

대연정론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연정의 최대 명분으로 내건 지역구도 극복이 한나라당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 의장은 "여소야대가 된 것도 지역구도에서 연유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구도가 해소되면 정치권의 이분법적 사고도 고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한나라당과의 연정이 성사되면 노 대통령에겐 또 하나의 '보너스'가 생긴다. 이른바 실정(失政) 책임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정책 실패에 대해 공격하려 할 때 "연정에 참여해 놓고 무슨 소리냐"고 반박할 수 있는 것이다. 민노.민주당과의 소연정이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오래 지속되기도 어렵다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

◆ 개헌 논의로 이어질까=문 의장은 인터뷰에서 "연정 논의가 개헌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개헌론이 나오면 내각제 얘기도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그러나 여권은 당분간 내각제를 추진하겠다거나, 배제한다거나 하는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모호성을 유지하려 할 공산이 크다.

이 같은 모호성은 여권 내의 예비 대선주자 관리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권력구조 논의의 방향이 모호하면, 여든 야든 차기 주자군이 치고 나서기가 어려워진다. 상대적으로 현직 대통령의 발언권이 강화된다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믿는 것 같다.

◆ 기존 지지층 재건 포석도=최근 열린우리당은 심각한 지역 기반의 붕괴로 고민하고 있다. 영남에선 한나라당의 절대우위가 깨지지 않고 있다. 호남 재.보선에선 계속 민주당에 지고 있다. 여기다 '고건 중심 신당론'까지 나온다. 충청권에서는 심대평 충남지사 등의 '중부권 신당론'이 나오고, 자민련도 영향력 회복을 꾀하고 있다. 어느 지역 하나 안심하기 힘든 상황이다. 진보 성향의 지지층 상당수가 민노당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도 큰 부담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여권은 지역 중심 정치구도라는 판 자체를 깨야 한다. 연정론은 그 고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연정론 제기 이후 호남 지역의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나타나고 있다.

◆ 여야 합친 '절대 권력' 등장할까=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연정을 구성하면 국회는 큰 의미가 없어진다. 재적 90%를 넘나드는 절대 권력을 가진 여권이 새로 출현하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만 합의하면 개헌이든 뭐든 다 할 수 있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우선 연정 이후의 의사결정 구조다. 문 의장은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합동 의원총회에서 정책을 결정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협의 틀이었던 원내대표 회담 등은 의미가 크게 줄어드는 셈이다.

문 의장은 인터뷰에서 "연정 추진의 1단계는 이미 성공했다"고 말했다. "공론화를 통해 연정이 더 이상 죄악시되지 않게 됐으며, 그것만으로도 획기적 전기가 마련된 셈"이란 것이다. 향후 권력 구조, 선거제도 개편 등의 논의에서 여권이 주도권을 쥔 것만으로도 일단은 성공이란 주장이다. 여권이 줄기차게 연정을 주장하는 진짜 목적이 여기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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