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부터 국제선도 멈춰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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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으로 아시아나 국내선 운항과 화물기 운항이 차질을 빚고 있다. 18일 김포공항 전광판에 아시아나 비행기 결항을 알리는 안내 문구가 나오고 있다. 강정현 기자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 이틀째인 18일 국내선 81편과 화물기 4편 등 85편이 결항하는 등 항공 대란이 현실로 나타났다. 제주도를 오가는 항공기와 부산~인천을 운항하는 국제선 연결용 항공기를 제외한 국내선 전편의 운항이 중단됐다. 19일에는 결항 사태가 국제선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도 18일부터 쟁의대책위원 26명이 간부파업에 돌입하는 한편 20일까지 노조원에게 '고강도 투쟁 지침'을 전달할 계획이어서 양대 조종사 노조의 연대파업도 우려된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19일 인천~시드니의 OZ 601과 602 편이 결항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시드니행 예약자 270명과 시드니에서 서울로 돌아오려던 129명이 현지에서 발이 묶이게 됐다. 나머지 국제선 110편은 정상 운항한다. 국내선은 163편 중 80편이 결항한다. 또 이날 LCD와 휴대전화.반도체 230여t을 싣고 미국과 홍콩으로 가려던 화물기 전 편(3편)의 운항이 모두 중단됐다.

아시아나 측은 "항공업계 해외 신인도와 대체 교통수단의 유무 등을 고려해 국제선을 우선 운항하고, 이어 제주 노선-화물기-국내선 내륙 노선 순으로 항공기를 투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윤중근 아시아나항공 운항관리팀장은 "당분간 국제선은 하루 한 편 정도 운항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비행 스케줄은 운항 하루 전 최종 확정되므로 여행객은 출발 하루 전날 예약센터로 문의해 운항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노조원 300여 명은 전날에 이어 인천 영종도 모 연수원에 집결해 합숙농성을 계속했다. 노조는 14개 핵심 쟁점을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파업을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사측도 "퍼주기 식의 요구조건 수용은 없을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조종사 노조의 요구사항은 기업의 인사.경영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고, 항공법을 위반한 명백한 불법 파업"이라고 비난했다. 또 "정부는 불법 파업에 대해 조속히 긴급조정을 결정해야 한다"며 "항공산업을 필수 공익사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조종사 노조는 월권적 인사.경영권 침해와 비행안전을 저해하는 요구를 즉각 철회하고 국가 경제와 기업현실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단체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기찬.서경호 기자 <wolsu@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수출품 화물창고서 낮잠
하루 40억원 운임 손실

항공편의 무더기 결항으로 여름 휴가철을 맞아 여행을 떠나려던 승객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또 항공사의 손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수출업체들은 수출입 시기를 제때 못 맞춰 애를 태우고 있다.

18일 오전 10시 폴란드에서 인천으로 입국한 유스티나(38.여)는 "진주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려고 김포공항에 왔는데 발이 묶여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폴란드에서)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막상 도착해서는 하루 종일 공항에서 지내야 한다는 게 어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하루 동안 아시아나 국내선을 이용하지 못한 승객은 무려 2000여 명이다. 아시아나항공 고객센터에는 "노조간부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달라. 휴가철에 승객을 볼모로 자기들 이익을 채우려는 게 정상적인 행동이냐"는 등의 항의전화가 이어졌다. 반면 대한항공 카운터에는 아시아나항공편을 예약했던 승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국내 내륙노선의 경우 평균 66%이던 탑승률이 91%까지 높아졌다.

수출 전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17일 81t의 전자제품이 런던으로 가려다 보류된 데 이어 이날도 휴대전화와 PDP.LCD 등 400여t의 해외 수출길이 막혔다. 파업이 19일까지 이어질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반도체와 휴대전화.전자부품 230여t이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인천공항 화물창고에서 낮잠을 자야할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은 파업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아예 화물수송 예약을 받지 않고 있다.

아시아나 측은 이날 하루 결항 사태로 40억원가량의 운임 손실이 생겼고, 파업이 길어질 경우 손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19일 시드니에서 서울로 오는 아시아나항공편이 결항될 것으로 예고되자 호주로 여행갔던 휴가객들의 발이 묶였다. 호주 현지 여행가이드 문정교씨는 "현재 자리가 없을 정도로 여행객이 몰리는데 국적 항공편이 제대로 운항되지 않으면 여행객이 뚝 끊길 것"이라며 "이 경우 이곳(호주 현지) 여행사는 물론 국내 여행사도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고 걱정했다.

김기찬 기자

'합법 파업' 이라 정부 개입 안해
공익사업장 지정 안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에 대해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왜일까.

첫째 이유는 이번 파업이 합법적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정부는 "합법 파업은 보호하며 정부가 개입하지도 않을 것"이란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사측도 정부 개입은 원치 않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2001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노조가 동시에 파업했을 때 정부가 개입해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모두 들어주도록 압력을 넣는 바람에 노조의 힘만 키워줬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합법적인 파업이라도 국민 불편이 커지는 만큼 정부가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병원이나 철도 등 국민의 안전.생명 등과 관련된 사업장은 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가 가능하다. 하지만 항공업은 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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