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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심상찮은 대기업 연말 인사 … 공통점은 ‘위기 뛰어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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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조직 개편과 인적 쇄신에 앞서 그룹 경영기획실장을 먼저 교체한 것이다.”

 한화그룹이 10일 중국 사업을 총괄하던 금춘수(61) 사장을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경영기획실장에 보임하면서 밝힌 설명자료의 문구다. 금융·태양광 같이 적극적인 투자를 했지만 실적이 신통치 않은 사업에 대한 강력한 경고, 인적 구조조정 메시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금 사장은 김승연(62) 회장의 복심(腹心)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2007년부터 4년간 경영기획실장을 맡았다. 이번엔 김 회장 복귀를 앞두고 그룹 혁신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게 그룹 안팎의 해석이다. 금 사장 자신도 11일 “힘든 일을 맡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업무파악부터 할 것”이라며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이밖에 한화는 여천NCC 대표이사에 최금암(54) 전 경영기획실장, 한화이글스 대표이사에 김충범(58) 전 회장 비서실장을 선임하기도 했다. 이번 인사를 통해 한화 긴장감은 급격히 높아졌다. 한화 내부에서는 “금 사장의 업무 파악이 끝나는 대로 큰 그림이 그려지면, 대대적인 사업조정과 상당한 규모의 인적 재편이 이뤄질 것”이란 이야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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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의 금춘수 경영기획실장 혁신 임무

 재계에 인사 태풍이 휘몰아칠 조짐이다. 10대 그룹 연말 인사의 키워드는 ‘위기’다. 잇따르고 있는 조기 인사는 위기 의식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오너의 힘이 실린 인물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 역시 위기 돌파의 의지를 담은 조치다. 조직 개편은 슬림형이 대세다. 퇴진은 늘어나지만 승진은 최소화하는 형태다. 후계 구도를 정비하는 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이목이 쏠리는 곳은 역시 삼성이다. 삼성은 이건희(72) 삼성전자 회장의 투병이 길어지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이달 말 또는 12월 초에 사장단 인사와 임원 인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는 이재용(46)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와 이부진(44) 호텔신라 사장의 승진 여부가 최고의 관심사다. 미국식 경영방식을 선호하는 이재용 부회장이 ‘책임 경영’을 내걸고 삼성전자 대표이사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반도체)과 윤부근 사장(가전), 신종균 사장(모바일)의 3인 각자 대표 이사 체제다. 이부진 사장은 현재 호텔신라 대표이사와 제일모직 경영전략담당 사장, 삼성물산의 상사부문 고문으로 그룹 전반에 걸친 경영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경영진의 대규모 교체도 예상된다. 특히 삼성SDI와 옛 제일모직,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 간 연쇄 합병에 따라 교통 정리가 필요한 부분이 많이 생겼다. 사장만 7명에 달하는 삼성전자 정보기술·모바일(IM) 부문은 임원과 조직 수술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1960년대 후반 출생한 유능한 연구개발 인력이 대거 발탁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지난 5월 팀장급 인사를 대거 교체한 미래전략실은 인사 폭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중·포스코·GS칼텍스 임원 대거 조정

현대차그룹은 상시 인사를 통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올 들어 설영흥(69) 중국 총괄부회장, 최한영(62) 상용차부문 부회장, 박승하(63) 현대제철 부회장 중량급 인사들이 물러났다. 연말 인사는 각 보임별로 승진 인사가 점쳐진다. 현대차 측은 “글로벌 판매 확대를 위해 해외국내 영업파트를 대폭 보강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SK그룹도 다음 달 중순경에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최태원(54) SK그룹 SK㈜ 회장의 경영공백 장기화로 인사에는 그룹 최고 의사결정체제인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인사의 구심점이 될 전망이다.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신상필벌의 인사원칙에 따라 제한적인 승진과 일부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를 중심으로 한 문책성 교체 인사가 점쳐지고 있다. SK 관계자는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한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 임원 승진 폭은 예년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갿고 말했다.

가장 발 빠르게 인사를 통해 위기대응에 나선 곳은 창사 이후 최악의 실적을 내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달 16일 조선 계열사 262명의 임원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81명을 과감히 조정했다. 올 3분기까지 3조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한 데 따른 문책성 인사다. '세계 1위 조선회사' 사수를 위해 구원투수로 투입된 최길선(68) 회장, 권오갑(63) 사장이 초강수 인사와 조직 통폐합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0일에도 최대 70%까지 임금 차등폭을 두는 성과급제 개편안을 내놓으며 조직문화 개선에 나서고 있다.

올 3월 권오준(64) 회장 체제를 출범시킨 포스코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다음 달 임원 인사를 단행한다. 매년 2~3월 정기주주총회 때 하던 인사를 최대 3개월 조기 시행하는 것이다. 포스코 측은 갾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촉발된 위기 상황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차원갿라고 설명했다. 롯데 역시 매년 2월이던 임원 인사를 올해는 두 달가량 앞당긴다는 방침을 정했다. GS칼텍스는 올 상반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임원 9명에게 사표를 받았다.

조직 추스리려 그룹 후계자 구도 강화도

올 연말 인사에선 오너 경영인의 급부상 여부도 관심 대상이다. 위기 타개를 위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 후계 구도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오너 일가의 승진이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정몽준(63전 국회의원)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장남인 정기선(32)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은 상무보를 거치지 않고 상무에 선임됐다. 최태원 SK㈜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25)씨는 SK텔레콤에 적을 두고 모친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일을 돕고 있다. 다만 본격적인 갻경영수업갽을 위한 보직 변경은 이뤄지지 않을 예정이다. 효성에선 이달 19일 팔순을 맞는 조석래 회장의 뒤를 이어 장남인 조현준(46) 사장과 3남 조현상(43) 부사장의 승진 가능성이 있다. 이밖에 구광모(36) LG 시너지팀 부장, 김동관(31) 한화솔라원 영업담당 실장, 김남호(39) 동부팜한농 부장 등 3세 경영자의 임원 승진 여부도 관심을 끈다.

이상재·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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