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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약관 불공정 … 10명 중 8명 "피해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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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모(19)씨는 최근 영화사이트인 D사로부터 한달치 회비 및 이용료 1만4500원을 휴대전화 요금에 붙여 자동 결제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김씨는 "사흘간 무료 체험 행사에 참여해 영화를 몇 편 봤을 뿐이라고 항의했으나 무료 서비스 기간이 지난 뒤 해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사이트 회원이 돼 요금이 청구된다는 약관을 들이대며 환불해 주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인터넷이 생활화하면서 각종 온라인 사이트의 이상한 약관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다.

본지가 조인스닷컴과 공동으로 지난달 23일부터 6일까지 네티즌 151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불공정 약관으로 피해를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이 79.2%에 달했다. 또 이들 중 93.5%가 해당 사이트를 상대로 피해 구제를 신청했지만 보상을 받은 경우는 12.4%에 불과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 약관을 읽기가 너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약관을 읽지 않거나(65.4%), 대충 읽는(31.8%)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약관에 대한 불신도 커 응답자의 97.6%가 "약관이 공정하게 작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포털이나 쇼핑몰, 게임 사이트 등의 불공정한 약관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사이버 쇼핑몰 피해 상담 건수는 2001년 5288건에서 지난해엔 1만7673건으로 크게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약관 내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인터넷 업체들이 정부가 권고한 표준약관 대신 자체적으로 만든 약관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네티즌의 피해를 막기 위해 2003년 10월 전자상거래(인터넷 쇼핑몰 이용) 표준약관을 개정했다. 그러나 서울시 전자상거래센터가 올 3월 1만1029개의 인터넷 쇼핑몰 약관을 조사한 결과 공정위의 표준약관을 따른 업체는 20.2%(2230개)에 그쳤다. 강정화 센터장은 "인터넷 기업 대부분이 자체적으로 제정한 약관이나 반품.피해 보상 규정 등이 포함되지 않은 약관을 적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의 표준약관은 권장사항이지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해당 업체가 표준약관을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공정위 김석호 전자거래보호과장은 "인터넷 업체들에게 표준약관을 지킬 것을 권고하면 법적 근거를 대라며 반발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김성호 사무국장은 "인터넷 이용자가 크게 늘면서 약관 등으로 피해를 보는 역기능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협회 차원에서도 개인정보나 저작권 보호 등을 약관에 명시케 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지만 이를 강제로 업계에 요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인터넷 약관이 법률적 용어로 가득 차 있어 읽기에 너무 어렵다는 지적도 한다. 어기준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장은 "인터넷 사이트들의 약관을 들여다 보면 불공정한 내용 외에도 읽기가 불편하고, 인터넷 업체가 내용을 바꿔도 회원들에게 일일이 통지하지 않는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강조했다.

장정훈.이원호.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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