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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고 부수는 게 게임? 역사·철학 녹아든 진지한 놀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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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명’ 시리즈를 만든 시드 마이어. 그의 아들 라이언 마이어도 게임개발자다. [사진 파이락시스]

기성세대들이 생각하는 PC게임의 이미지는 ‘쏘고, 부수고, 때리는 애들 놀이’다. 그러나 미국의 유명 게임개발자 시드 마이어(60)의 게임을 보면 그런 생각을 접을 수 있다. 특히 ‘시드 마이어의 문명’(‘문명’) 시리즈가 그렇다. 자신의 문명을 선택한 뒤 다른 문명과 경쟁 또는 협조하면서 석기시대부터 차근차근 발전시키는 내용의 게임이다. 한마디로 역사·철학·문명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게임에 버무렸다.

1991년 선뵌 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2100만 카피 이상 팔렸다. 그래서 시드 마이어는 ‘게임업계의 스티븐 스필버그’로 불린다. 자기 이름을 게임 타이틀 에 붙이는 몇 안 되는 제작자다. 그는 게임제작을 총괄하는 게임프로듀서다.

 그가 최근 ‘문명’ 시리즈 최신판 ‘문명: 비욘드 어스(Beyond Earth)’를 들고 나왔다. 이 게임은 문명의 무대를 지구에서 우주로 옮겼다. 그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문명’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인류 역사보다 더 서사적인 게 있나. 인류는 지금까지 수많은 업적을 이룩해왔다. 역사 어딘가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요소가 있다. 그래서 게임에 역사를 접목하고 싶었다.”

 -당신 만의 게임개발 철학은.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어야 한다. 이건 모든 게임의 본질이다.”

 그의 개발철학은 ‘문명’에 잘 배어 있다. ‘문명’은 상대를 정복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외교·문화·과학의 성취를 통해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 그만큼 더 어렵고, 중독성도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환갑의 나이에도 게임개발이 가능한가.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매일 출근해 아이디어가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지켜보는 게 즐겁다. 게임개발자는 세상 최고의 직업이다. 매일 창의적인 사람들과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특권 때문이다.”

 - 게임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게임은 이젠 모두를 위한 진지한 놀이가 됐다. 누구보다 아이디어가 풍부한 사람들이 계속 게임을 만들고 있다. 게임산업은 계속 성장할 거다.”

 시드 마이어는 원래 게임광이었다. 즐겨하던 게임에 만족하지 못해 ‘내가 만들면 더 잘 만들겠다’며 1982년 아예 게임회사를 차렸다. 그의 회사는 93년 대형 게임소프트웨어 업체에 인수됐다. 96년 시드 마이어는 거기서 나와 지금 회사 ‘파이락시스’를 만들었다.

 - 그때 왜 파이락시스를 차렸나.

 “대규모 팀 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러나 나는 소규모 팀과 작업하는 게 더 좋다.”

 그는 늘 게임제작에만 신경을 썼다. 경영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았다. 게임개발 경력 43년째인데도 게임산업에서 아직까지 그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다.

 2011년 국내에서 발매된 ‘문명 5’는 큰 인기를 모았다. 시드 마이어는 그 해 추가로 내놓은 ‘문명 5: 한국 문명’에선 세종대왕을 문명의 지도자로 추가했고, 게임의 한반도 지도에 ‘동해(East Sea)’라고 표기했다.

 -동해라고 쓴 이유는.

 “우리는 가능한 한 게임이 출시되는 지역의 문화를 올바르게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한국의 역사적 인물 중 세종대왕을 선택했다.

 “‘문명’에서 지도자는 가장 영화로운 시기의 제일 위대한 역사인물로 뽑는다. 한국 팬들은 정열적이다. 누구보다 세종대왕을 보길 원했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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