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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화하는 경제정상회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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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방선진국 수뇌들이 75년 프랑스의 랑부예에서 선진국 정상회의라는 것을 연례행사로 발족시킬 때만해도 그것은 다분히 경제회의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회의참석의 동기부터가 73, 74년의 오일쇼크를 맞아 서방세계의 부를 독점하고 있는 나라들이 산유국들의 결속된 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여 부자 나라들이 누려오는 경제적인 권익을 지켜내자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경제문제만을 명확하게 분리시켜 다룰 수가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한 일이었다. 정치·안전보장 문제가 경제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면 구-미-일 수뇌들의 모임이 경제로 출발은 했어도 정치와 군사의 성격을 동시에 띠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80년 6월 베네치아 정상회의는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주이란 미대사관 인질사건, 난민문제, 국제테러에 관한 정치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
81년, 오타와 정상회의에서는 정치색이 한층 짙어져 아랍-이스라엘 분쟁, 레바논에 있어서의 파괴활동, 소련의 군사력 증강, 캄보디아 등 10개 항목을 「정치문제에 관한 의장총괄」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러니까 서방정상회의는 일곱 나라를 한바퀴 돌고 프랑스에서 제2라운드를 시작하면서 정치·경제 정상회의로서의 자리를 굳힌 것이다.
이번 베르사유 정상회의의 경제문제 토의에서는 미국의 고금리, 일본의 수출공세가 유럽과 캐나다 수뇌들의 공격대상에 오르는 반면 「레이건」미국대통령은 대소수출과 융자의 규제룰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미국의 높은 금리가 서방세계의 경제적인 침체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작년 오타와 회의에서 「레이건」은 인플레가 수습되는 대로 금리를 내리겠다고 약속하여 작년까지 20%이던 금리를 현재 16%까지 내렸다.
그러나 베르사유의 유럽과 일본 수뇌들은 미국의 금리를 더 내리라고 요구할 채비를 하고 있다. 미국의 고금리는 달러를 미국으로 흡수하여 달러강세가 되고 달러로 석유와 그 밖의 원자재를 수입해야하는 선진공업국들에 큰 부담을 안기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베르사유 회의를 앞두고 96개 상품에 대한 관세폐지, 4개 상품에 대한 수입확대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이 시장개방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조치가 집중공격을 피하려는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다.
반면에 「레이건」은 프랑스와 서독의 소련 천연가스수입과 일본의 대소부유도크 수출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군사적인 목적에 전용될만한 물자와 기술의 대소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요구할 예정이다.
그러나 수출에서 대소 의존도가 높은 일본, 전통적으로 소련·동구와 긴밀한 경제관계룰 유지하고 있는 독·불 등은 「레이건」의 일방적인 요구에 저항하면서 정경분리를 주장할 것이다.
미국의 효과적인 대소정책을 위해서는 서방선진국들의 결속이 필요 불가결한 조건임을 생각하면 소련과의 관계를 둘러싼 이런 이해의 충돌은 특히 「레이건」에게 큰 짐이 되는 것이다.
정치문제에서도 대소자세의 강·수의 조정이 논의의 초점이 된다.
「레이건」행정부는 한편으로는 대결노선의 선상에서 중성자탄, MX미사일 그리고 B1전폭기의 생산을 확정 짓고 해군전략에도 공격적인 전략을 가미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작년11월 제네바에서 미·소 전역 핵 삭감교섭을 재개하고 미·소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등 서구노선에 접근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83년 가을로 예정된 퍼싱II와 순항미사일의 유럽배치에 반대하는 서구의 반핵 운동에 직면하여 소련을 향한 목소리가 여러 갈래로 분열될 위기에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일곱 나라 수뇌들은 무엇이 문제인가에 관해서 원천적인 합의를 얽어내기 바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공동정책의 합의 같은 데는 훨씬 못 미치는 선에서 베르사유 회의를 마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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