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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천억의 돈보다 온 국민의 일할 맛 앗아간게 더 큰 범죄-장 여인사건의 여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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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소나 말을 움직이게 하려면 먹이를 주거나 채찍질을 하거나 하면 된다.
다정스레 도닥거리는 방법도 있다. 그러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여기미국의 학자 매크레거가 꾸며낸 『X이론과 Y이론』이라는게 있다.
사람이란 강제 당하지 않으면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내리거나 또는 금전적으로 자극을 주거나 해야한다는 것이 X이론이다.
이와는 반대로 인간은 남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스스로가 실점한 목표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노력하게 된다는게 Y이론이다. 그리고 능동적으로 움직이겠다는 에너지는 Y이론을 따를 때에만 생긴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대단한 이론도 아니다. 진심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이도 아니요, 이도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체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이다.
X·Y이론 대신에 우리는 일할 맛과 일할 보람이라는 말을 쏜다. 보람이며 맛은 남이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느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능력이며 가치를 남이 알아준다고 생각할 때 신바람도 난다.
일할 맛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아무리 강제한다해도 능률은 오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훌륭한 기업매니지먼트란 모든 사원에게 일할 맛과 보람을 안겨주는 것 이의의 아무것도 아니다. 회사가 내 능력을 알아주고 또 내가 일하는 만큼의 보상을 틀림없이 받게 된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일할 맛도 생기고 신바람도 난다.
만약에 자기보다 능력도 떨어지고 일도 덜하고 있는 사람이 그저 사장에게 아첨을 잘 하거나 연줄이 닿거나하여 자기보다 먼저 승진하게 된다면 그는 당장에 일할 맛을 잃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회사의 사기와 능률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만약에 또 사원들에게는 회사발전이나 사업보국을 내세워가며 긴축을 강요하면서 경영자 자신은 사리를 추구하고 호유를 일삼는다면 일할 보람은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런 때에 강제란 일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또 강제가 장기화되면 능률만 떨어질 뿐만 아니라 저항감도 늘어나게 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좋은 정치란 것도 별게 아니다. 모든 시민이 제각기 말은 일에 자발적으로 전력을 다 쏟을 수 있도록 일할 맛과 보람을 안겨주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총화와 발전의 에너지도 나온다.
사람들은 장 여인 내외가 몇천억원을 주물러 터뜨렸다고 격분한고 있다. 그러나 그 내외가 저지른 보다 큰 범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일할 맛을 빼앗은데 있다. 그 손실은 몇천억원 정도가 아니다.
30대의 한 여인이 불과 4년 사이에 몇백억원의 거부가 되고, 한달에 3억원 이상씩이나 썼다는 것도 한평생을 두고 피땀 흘려봐야 몇천만원도 모으지 못하는 노동소득자에게는 맥빠지는 얘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정말로 일할 맛을 잃게 만든 것은 그게 아니었다.
가령 1년에 1천만원을 버는 봉급생활자가 1할을 세금으로 낸다면 남는 돈은 9백만원이 된다. 한편 1억을 버는 기업가가 누진세법에 따라 6할씩이나 납세한다 하더라도 남는 돈은 4천만원이 된다. 그것은 봉급생활자가 4년 동안에 버는 돈보다도 많다.
그래도 소시민들은 고급승용차를 굴리고 주말마다 골프장에 나가는 기업가들을 보고 별말하지 않는다. 기업가는 그만한 재미를 봐도 좋을 만큼의 자본과 노력을 쏟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도 언젠가는 그만한 재미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기 때문이다.
장 여인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그녀는 땀 한방을 흘리지 않고 호유해가면서 하루아침 사이에 몇백억원을 모을 수 있었다. 더욱이 그녀가 바친 세금은 설렁탕집 주인이 바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만이 아니라 자금출처를 전혀 알 수 없는 사채를 수백억원씩 굴려가며 한번에 몇억원씩 불로소득을 하면서도 한푼도 세금을 물어오지 않은 정체불명의 사채업자들이 많다는 사실도 시민들의 상식으로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당초에 검찰은 장 여인사건에서 사채관계는 따지지 않겠노라고 밝혔었다. 경제계에 미치는 엄청난 여파를 염려해서라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에나 사상시장은 있다. 그러나 사채시장이 마비되면 국내경제가 결딴날 정도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사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네 금융정책이 엉망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단번에 1천억원 이상을 동원할 수 있는 큰손들의 정체며 소재를 밝힐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 과세하지 못 했다든가 안 했다던가 하는 것은 정말로 입맛 떨어지는 얘기다.
구멍가게 할머니가 한푼, 두푼 은행에 맡긴돈의 이자에도 세금이 붙는다. 학자가 연구를 위해 쓰는 자료비며 문인들의 취재여행비도, 또는 기업들의 문화적인 기부도 면세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사채업자들의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준다면 이처럼 불공평한 일도 없다.
이런 비리가 그대로 넘어간다면 몇억원의 융자를 얻어 공장을 지키려고 은행을 뛰어다니던 기업가는 일할 맛을 잃고 사채놀이나 부동산투기로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1백∼2백원을 아껴오던 알뜰한 가정주부나 퇴직금에 내집 마련의 꿈을 걸고 일해온 그의 남편들에게는 꿈결만 같은 억대의 돈은 아무것도 아닌 세상에서는 아예 살맛을 잃게될지도 모른다.
정부는 장 여인사건의 마무리를 위해 여러가지로 손을 쓰고 있다.
돈도 몇천억원인가를 새로 찍어내고 선의의 피해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일할 맛을 잃게된 온 국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는 좀처럼 보상받기는 어렵다. 그리고 온 국민이 일할 맛을 되찾기 전까지는 사건이 완전히 마무리지었다고 볼 수가 없다. 정치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홍사중<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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