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국회의 책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민들의 눈과 귀가 오늘 개회 된 임시국회에 쓸리고 있다. 그것은 국민에게 전대 미문의 충격을 준 어음사취 사건의 진상이 깨끗하게 밝혀지고 그에 따른 뒷수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여·야는 물론, 정부도 이번 임시 국회를 통해 국민의 의혹을 풀겠다고 장담하고 있어 검찰의 미진 한 수사에 실망마저 느꼈던 국민들의 기대는 크다.
이번 국회에 임하는 여·야와 정부 관계자들은 이 같은 국민의 바람을 의식하면서 한치의 허위나 가식도 없이 이번 사건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규명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기를 우선적으로 당부한다.
누차 지적됐지만 어음사취 사건이 국민 정신에 끼친 해독은 매우 깊고도 넓다.
이번 사건은 우선 한푼 두 푼을 아끼며 성실하게 살려는 대다수의 국민을 우롱했으며「깨끗한 정부」를 지향하던 정부에 대해 불신감을 뿌리 내리게 했다.
거기다 은행의 배임, 권력배경에 대한 의혹 등은 국민의 기대감을 배반한 공직자 상마저 심어 주었으며 서로의 지위와 배경을 이용한 장영자-이철의 부부의 결혼은 순결한 혼인의 이미지마저 왜곡되게 만들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재산을 사기 당한 수 천명의 피해 시민들의 억울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마디로 이번 사건은 구시대의 부조리를 떨쳐버리고 새 시대의 밝은 질서 생활로 진입하려는 나라의 행로와 국민의 의지를 기본부터 뒤흔든 사건이다.
사건의 내용이 이처럼 심각한 만큼 진상규명과 사후대책을 논의하는 임시국회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결국 이번 임시국회에서 어떤 시원한 결말이 이루어지느냐의 여부는 의원들이 사건의 중대성을 어느 만큼 절실히 인식하고 있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야당은 이번 사건을 두고 정치공세를 펼 예정이라고 하나 그보다는 우선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정치공세에 앞서 진실을 알고 싶은 것이 지금 국민들의 솔직한 심경이다.
또한 정부와 여당은 이번 임시국회를 통해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조금이라도 숨기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사건을 두고 경위야 어떻든 국민 앞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허심탄회하게 임해야 할 것이며 그래야만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앞으로의 국정에 국민의 자발적 협조를 기대 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된다.
국민들의 의혹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시종여일하다. 한 마디로「돈의 행방」과「배후」다. 장 여인 부부가 사기 한 2천여억원의 돈이 어디에 잠겼느냐 하는 문제가 진상을 밝히는 초점이다.
증시에서 손해를 보았다든가 부동산과 골동품 등 개인재산으로 은닉했다든가 또 다른 사채업자에게 편취 당했다든가 하는, 지금까지의 수사결과는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시 말해 돈의 액수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당국의 수사가 왜 일목요연하게 돈의 행방을 밝히지 못하는지 국민의 궁금증은 더해만 가며, 이런 궁금증이 누적되면 정부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아울러「배후」를 밝히는 문제인데 그것은 은행장들이 장영자-이철희 부부만 믿고 거액의 무담보 대출을 해 줄 수 있느냐 하는 소박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지금까지의 수사로는 이규광씨가 적극적인 역할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렇다면 은행이나 기업간부들은 실성한 사람일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이 모든 의문점을 따지고 파헤쳐 사건의 원인과 개선책을 찾는 것이 이번 국회가 할 일이다. 어느 한 정당의 차원을 넘어 나라의 운명을 생각한다면 모두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이번 사건을 다뤄야할 것이다.
국민이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행정부나 입법부의 존재처럼 나라사람으로 연결되는 강력한 힘은 없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