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파일] 여관방 몰카에 귀신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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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혹성 B612호'를 아세요? 끝이 없는 우주의 별들을 어떻게 다 외냐고요? 듣고나면 익숙할 걸요. 어린 왕자가 사는 주소니까요. 자존심 강한 장미와 어린 왕자가 티격태격하며 서로 길들이던 별이죠. 길들임, 참 울림이 큰 말입니다. 낯섦과 서먹함, 다가섬과 받아들임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먼 곳이니까요.

가출한 어린 왕자가 바라보는 밤하늘에는 수천, 수만 송이의 장미가 피어납니다. 이유가 뭘까요. 기억입니다. 벌레를 잡고, 바람을 막고, 물을 뿌려 주던 장미와의 애틋한 기억 때문이죠.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살면서 당신의 몸에 파편처럼 박혀서 남는 것은 온통 기억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죠. 지난 삶의 기억이 지금도 당신을 길들이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호러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영화 '목두기 비디오'(15일 하이퍼텍 나다 개봉)는 이 점을 너무도 잘 압니다. '관객이 무엇에 길들여져 있는가'를 먼저 꿰뚫고 정확하게 역습을 가합니다. 급소를 찔린 관객들은 "우욱!"하고 뒤늦게 비명을 지를 수밖에요. 여관에서 찍은 몰래 카메라에 귀신이 잡힙니다. '과연 귀신은 존재할까'. 이런 물음을 안고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문제의 여관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죽인 뒤 아들이 자살한 살인사건을 접하게 됩니다. '화면에 잡힌 귀신이 바로 그 아들이 아닐까.' 급기야 제작진은 음향 전문가를 찾아갑니다. 분석 결과 "아.버.지"하는 희미한 소리가 잡힙니다. 물론 사람의 소리가 아닙니다.

관객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습니다. 귀신을 좇아가는 여정이 너무나 사실적이기 때문이죠. 사건 관련 인물들과 어렵사리 인터뷰를 하고, 이미 숨을 거둔 목격자의 아들을 찾아내 사건 당시의 정황을 듣습니다. '추적 60분'을 방불케 하는 추적입니다. 그리고 신 내린 무속인까지 데려다 귀신을 만나게 합니다. 이 모두를 아무런 과장없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카메라에 담습니다.

객석에서 느끼는 전율은 격이 다릅니다. 가상의 공포가 아니라 현실의 공포가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이죠. 영화 속의 귀신은 스크린에만 머물죠. 현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나오진 못합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속의 귀신은 다릅니다. 당신이 숨을 쉬는 공간과 귀신이 배회하는 공간이 하나니까요.

'목두기 비디오'의 반전은 압권입니다. 잔치가 끝나고, 성질 급한 관객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설 때죠. 제작진 이름이 자막으로 올라가는 순간 관객은 뒤통수를 맞습니다. '식스 센스'나 '디 아더스'와 또 다른 맛의 반전이 객석을 뒤집거든요. 그제야 깨닫습니다. 우리는 매순간 길들여지고 있음을 말이죠.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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