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시 기획자 11명의 생생 체험담 책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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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화 이화여대 박물관 학예실장은 아침마다 몸이 고성능 안테나로 변한다. 박물관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조건반사처럼 밤새 별 일이 없었는 지를 감지한다. 30년 세월을 드나들었어도 늘 긴장하고 움직인다.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는 전시를 위해 그는 고승의 수련과정 같은 긴 시간을 바친다. 김달진 '서울아트가이드(www.daljin.com)' 편집인은 큼직한 가방을 어깨에 메고도 보조 들것을 챙긴다. 화랑가와 미술관을 돌며 전시 도록과 미술 자료를 챙겨 넣기 위해서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천직이 되면서 그는 '걸어다니는 미술자료실'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자료가 있어야 전시가 있다'고 믿는다.

세상은 두 사람을 큐레이터라 부른다.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일하는 학예연구원과 전시 기획자를 일컫는 큐레이터는 이제 젊은이가 손꼽는 미래의 직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술품을 다루고 전시를 꾸리니 일견 고상하고 편해 보인다. 하지만 막일꾼처럼 굴러야 할 일부터 과학자 뺨치는 연구까지 만능을 요구하는 업이 큐레이터다. '미술전시 기획자들의 12가지 이야기'(한길아트 펴냄)는 '큐레이터가 뭐길래' 궁금한 이를 위한 살아있는 보고서다. 한국 미술계에서 내로라하는 큐레이터 11명이 생생한 체험담을 들려준다.

김홍희 2006년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 박규형 아트파크 대표, 박정욱 이응노미술관 소장, 박찬응 스톤앤워터 관장, 박삼철 아트컨설팅서울 소장,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큐레이터, 박혜경 (주)서울옥션 경매사, 김철효 삼성미술관 리움 기록보존소 수석연구원, 김찬동 문예진흥원 미술전문위원과 나선화.김달진씨다.이들이 한국에서 큐레이터로 사는 일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얘기한다.

자료를 찾을 때마다'탐정소설의 스릴'을 느낀다는 미술 아키비스트(미술기록물 관리전문가) 김철효씨는 우리에게 낯선 기록관리학을 도전할만한 큐레이터 1순위로 추천한다. 공공미술 전문가로 거리를 누비는 박삼철씨는 미술을 유폐시키는 미술관의 벽을 뚫고 나가 바깥에서 부르는 삶의 노래가 즐겁다고 자랑한다. "음미되지 못하는 전시는 독"이라는 이동국씨, "큐레이터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라는 김홍희씨 등 현장에서 익어 나온 목소리가 미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길라잡이 구실을 한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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