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중 히말에 태극기 꽂은 기형희 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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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초라는 기쁨보다는 드디어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이 먼저 들더군요.』
지난 6일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의 고봉에 태극기를 꽂음으로써 우리 낭자군의 기개를 다시 한번 떨친 선경여자산악회 부대장 기정희 양(26·서울 상암동 255의 45) .
히말라야 람중 히말봉(해발 6천 9백 50m)정복을 끝내고 25일 밤 귀국한 기양은 『처음이라는 기분은 언제나 좋은 것』이라며 「큰 일」을 해낸 여성답지 않게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3년여에 걸친 준비와 훈련 끝에 떠났던 등정이었지만 여성이기에 느끼는 불안감은 더했었다고.
해발 3천 8백m지점에 설치한 베이스캠프에서부터 고난의 손님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거세고 찬 산바람은 텐트를 날려버리기 일쑤였고 눈은 치워도치워도 멎을줄을 몰랐다.
『정상은 멀기만 하고 역경은 끝날줄을 몰라요. 실패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과 초초감이 엄습 해 오기도 했었죠.』
한발한발 올라갈수록 공기가 희박해져 몸이 나른해지며 숨이 차 오르는 이른바 「고산증세」는 훈련으로 단련 된 몸이지만 여성으로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등반 중에도 크림을 계속 바르고 화장지로 닦아내는 등 피부관리에 신경을 썼지만 흰 눈에 그을려 얼굴이 가무잡잡해졌다는 기 양은 산처녀답지 않게 수줍어했다.
기 양은 아버지 기준선씨(56·상업)의 3남 1녀 중 외동딸.
등산은 서울여상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 선경에 입사한 후 취미에서 프로화 했다고.
76년 고교졸업과 함께 회사생활을 하면서 산에 미치다보니 여태까지 사귀어 둔 남자가 없다는 기 양은 『큰일도 치렀으니 이제 나 자신의 문제도 생각해 보겠다』고 의미 있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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