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경제, 새로운 차원의 총력전 고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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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 경제가 미국의 수퍼 달러, 중국의 거센 추격, 일본 초엔저의 삼각 파도에 휩쓸려 비틀대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단순한 경기 사이클을 넘어 구조적 지각 변동에 접어드는 조짐이다. 문제는 한국 경제가 좀체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조경제’와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기부양책)’로 거센 파고를 이겨 낼지 의문이다. 오히려 글로벌 여론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올 3분기 한국의 소비자신뢰지수(CCI)는 국가 파탄에 직면한 그리스보다 낮은 세계 최하위권인 57위로 내려앉았다.

 전 세계는 경제 불안에 맞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과 ‘제조업 부흥’을 통해 강력한 경기 회복이 진행 중이다. 실업률 감소와 함께 양적완화도 종료됐다. 같은 앵글로색슨권인 영국도 올해 경제성장률이 3.2%(전망치)로 눈부시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에 맞서 정책금리를 탄력적으로 끌어내리고 강력한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 부문, 특히 서비스업과 부동산시장을 급속히 회복시킨 덕분이다. 일본은 인위적인 아베노믹스로, 유럽도 무제한 양적완화로 마지막 승부를 걸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경제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저성장과 고령화로 소비가 줄고, 기업의 설비투자도 위축되고 있다. 이런 구도에선 어떤 재정 확대와 금융 완화도 소용없다. 가계와 기업 등 민간 부문의 심리를 회복시키지 않는 한 경제를 살려내기 어렵다. 이미 전통적 재정·통화정책은 뚜렷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설비투자는 마이너스 1.5%를 기록했고, 올해도 분기별로 들쭉날쭉하다. 지난해엔 대기업의 영업이익이 늘어났고, 올해는 기준금리를 연속 인하했으나 설비투자가 맥을 못 추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금리 인하보다 미래의 불투명성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과거 1980년대의 3저(저금리·저달러·저유가)가 순풍이었다면 최근의 신3저(저성장·저물가·엔저)는 역풍이다. 이에 맞서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되돌리려면 새로운 차원의 대담한 총력전이 절실하다. 이런 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SK하이닉스의 선전이다. 2년 전 SK가 만년 적자였던 하이닉스를 인수한 뒤 과감하게 조(兆) 단위의 투자를 감행했다. 올 들어 SK하이닉스는 3분기 연속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으로 그 과실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시가총액 2위 자리를 놓고 현대차와 치열하게 다툴 정도다.

 경제살리기의 근본은 단순히 돈을 풀고 금리를 내리는 게 아니다. 기업가에게 기업하려는 마음, 근로자에겐 노동하려는 마음을 불어넣는 게 핵심이다. 과도한 비관론은 경제에 독(毒)이다. 이제 경제주체들에게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말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어떻게 불어넣을지 고민해야 한다. 호황기 때 이 욕구가 지나치면 투기와 거품을 부르지만 경기침체기에 이 욕구마저 상실되면 경제는 더욱 가라앉는다. 민간 부문의 심리를 바꾸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다. 어느 때보다 대담한 역발상과 과감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