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소득보전제 시기 이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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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이 일해서 돈을 벌면 정부가 현금으로 매달 일정한 보조금을 주는 근로소득보전세제(EITC.Earned Income Tax Credit)가 도입된다. 자활 능력이 없는 극빈층은 기초생활보장제로 보호하되, 일할 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에게는 일하는 조건으로 정부가 지원금을 얹어줘 자활 능력을 키우자는 취지다.

대상은 근로소득이 있는 가구로 연소득이 1900만~2045만원 미만이고, 자녀가 있는 가구가 1차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영업자와 농어민은 소득 파악이 어려워 1차 대상에서는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도입 시기는 2008년부터 하자는 보건복지부와 2010년 이후 시행하자는 재정경제부의 의견이 엇갈려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한국조세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2일 서울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한국형 EITC 도입 타당성 검토' 정책토론회에서 검토보고서를 발표했다.

◆ 도입 배경은=도시근로자가구 가운데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50% 미만인 가구 비중은 2000년까지 계속 줄었다. 그러나 2003년 16.8%에 불과했던 근로 빈민가구 비중이 지난해 18%로 높아졌다. 근로 빈민가구가 지난해 이후 내수 침체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았다는 얘기다. 자활 능력이 없는 극빈층은 기초생활보장제로 보호하지만, 그 위에 있는 차상위 계층은 지원 제도가 없어 근로 의욕을 잃을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그렇다고 기초생활보장 대상을 늘리는 것은 부작용이 더 크다. 근로 의욕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떻게 지원되나=지원 구조는 점증→평탄→점감의 모양이 될 전망이다. 보고서는 1단계를 도입하는 데 2년이 소요되는 만큼 2008년 시행할 수 있으며, 영세 자영자까지 확대하는 데는 5년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또 한국형 EITC 모형으로 ▶연평균 95만원씩 100만 가구에 지급하는 A형▶연평균 150만원씩 95만 가구에 지급하는 B형▶연평균 50만원씩 80만 가구에 지급하는 C형 등 세 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이 경우 소요될 재원은 5000억(C형)~1조5000억원(B형)으로 추산했다. A형의 경우 4인 가족 기준으로 연소득 1004만원까지는 근로소득이 높아질수록 지원금도 따라서 늘어난다. 1004만~1205만원 구간에는 근로소득이 늘어도 지원금은 똑같고, 1205만~2209만원까지는 근로소득이 늘어나면 지원금이 감소한다.

◆ 보완해야 할 장치는=부정 수급자가 가장 큰 고민이다. 정부가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근로자는 전체의 74%에 불과하다. 자영업자는 29%밖에 안 되고 농어민은 아예 소득을 파악할 자료가 없다. 따라서 실제 소득을 감추고 EITC 수급 신청을 할 경우 이를 적발해낼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자영업자와 농어민을 1차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문제는 없나=재정 부담이 급증할 우려가 있다. 재경부 허용석 세제총괄심의관은 "EITC를 도입한 미국은 소요 재원이 30년 만에 30배가 늘었다. 한국도 소요 재원이 매년 배로 뛰면 3년 안에 기초생활보장제 예산 4조원보다 더 많은 돈을 EITC에 써야 한다"고 신중론을 폈다. 국내 고용 시장 사정에 EITC가 잘 들어맞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이화여대 홍백의 교수는 "국내에선 빈민층이 일을 하기 싫어 실업자가 됐다기보다는 일자리가 줄어서 실업자가 양산됐기 때문에 근로 의욕을 부추기는 EITC로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 근로소득보전세제=저소득층이 일해서 돈을 벌면 정부가 보조금을 얹어주는 제도. 지원금이 월 소득의 30%라고 하면 월 100만원의 근로 소득을 올린 사람은 30만원을 정부에서 받는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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