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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서열화에 대한 오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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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대학입시의 서열화문제를 지적하면서 "세계 일류대학이라는 어떤 대학에서도 서열화로 사람을 선발하는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수능점수로 1번부터 순서대로 몇 개 우수 대학들이 앞에서부터 끊어 가는' 우리의 대입현실은 일견 개탄할 만도 하다.

그러나 세계 일류대학일수록 이런 서열화는 두드러진다. 미국의 일류대학은 '알짜 중의 알짜(the cream of the crop)' 집합체로 불린다. 매년 조사 발표되는 미국의 대학 랭킹과 그 신입생의 수학능력평가(SAT) 점수분포만 대비해 보아도 서열화는 절로 드러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순위에 갈수록 민감하고 우수학생 선점을 위한 노하우 대결이 불꽃을 튀긴다. SAT는 갈수록 자격시험화하고 대학별로 다양한 전형방식이 다투어 개발되고 있다. 입학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냉혹한 엘리트주의와 '혈통주의'의 유리벽을 뛰어넘기란 쉽지 않다.

명문 사립고 출신일수록 유리하고, 비슷한 조건이면 부모가 그 대학 출신인 자녀를 선호한다. 세계 톱10 대학 가운데 미국 대학이 7개를 차지하는 비결은 철저한 정예화와 대학 간 냉혹한 경쟁의 결과다. '옥스브리지'의 영국 또한 영재교육 강화를 주창하고 나서는 판이다. 대학의 서열화가 갈수록 촉진됨은 물론 세계화와 함께 각국의 유수 대학을 한 줄로 세우는 '세계 대학 랭킹'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우리의 대학교육 이수율은 41%로 세계 4위다. 그러나 대학교육 경쟁력은 조사대상 60개국 중 52위다. 한마디로 풍요 속의 빈곤이다. 우리의 '희망' 서울대의 세계 랭킹은 151위(상하이 교통대 조사)와 118위(영국 더 타임스 조사)로 각각 평가받았다. '대학이 변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변하느냐다. 최고의 학생을 뽑아 최고로 잘 가르쳐 세계의 엘리트 대학으로 도약시키는 길 이외의 왕도는 없다.

통합적 사고력 측정을 노린 서울대의 논술입시안은 그 출발점으로 보인다. 고교 간 학력격차를 도외시한 채 오지선다형의 수능과 부풀려진 내신으로 '최고'를 가려내기는 어렵다. 미국이 SAT에 논술 도입을 시도하고 일본이 학력시험을 부활시키는 등 논술 강화는 세계적 추세다. 일류대학일수록 다양한 에세이(논술)를 제출받아 착상과 사고력 잠재력을 비중 있게 평가한다.

학생선발권은 대학의 고유권한이며 이것 없이는 대학의 개성화나 특성화는 불가능하다. 우수 인재가 몰려드는 것은 일류대학의 프리미엄이다. 이를 기득권으로 간주하고 타도 대상 운운함은 지나친 사회 정치논리다. 자율과 경쟁을 무시한 평등주의적 입시정책으로 공교육은 하향평준화로 치닫고 있다. 유수 대학의 통합 논술이 암기위주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선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교육의 기회는 평등해야 하지만 교육의 세계에 평등은 안 될 말이다. 미국의 우수 고교생은 고교 때 대학 교양과목 수준의 AP(Advanced Placement) 과정을 이수해 대학에서 학점을 면제받는다. '하버드 아니면 죽음을'하는 입시생도 적지 않다. 프랑스 대학은 평준화돼 있지만 엘리트를 양성하는 고등사범이나 폴리테크닉 등 '그랑제콜'(Grandes Ecoles:큰 학교)이 따로 있다. 독일의 경우 세계 50대 우수 대학에 하이델베르크대학만이 47위로 랭크됐다. 독일 국가경쟁력의 상대적 쇠락이 대학평준화와 무관치 않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류대학은 키워야 하고 순위경쟁을 부추겨 초일류대학이 많이 생겨날수록 교육경쟁력과 나라의 미래는 보장된다. 일등이 전부를 가져가고, 초우량기업 하나가 나라를 먹여 살리는 세상에 일등을 끌어내리는 것은 모두의 자살행위다. 공교육의 진정한 적(敵)은 '기득권의 아성' 서울대가 아니라 평준화체제를 대학에까지 확대하려는 교육운동권적 사고, 그에 편승한 반엘리트주의와 반지성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변상근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