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꿔달라"에"200억 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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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신제강 회장 주창균씨>
회사의 부도가 확인된 12일 아침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일신제강 빌딩에는 이 회사의 종업원 2백여명이 모여 회사의 사후수습 대책을 묻는 한편『법정관리라도 해서 기업을 살려달라』『생산직사원 1천9백명의 4월분 급료를 지급해달라』는 등 건의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신제강 주창균 회장(62)은 12일 하오 서울 수송동 51의8 일신빌딩 10층 회의실에서 기자와 만나 자신의 심경을 피력했다.
-이철희씨를 알게 된 경위는-.
▲지난해 3월 중순 가까운 친구를 통해 소개받았다. 『자금이 필요하다면 능력있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친구의 주신으로 서울시내 모처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그때 무슨 얘기가 오갔는가.
▲이씨가 철강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라며 자금사정이 어려우면 저지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확답을 주지 않고 『생각해보겠다』고 한 후 헤어졌다.
-그후 이씨와 거래를 하게 된 동기는-.
▲이씨의 경력을 알아보니 전 모 기관의 차장과 국회의원 등을 지낸 분이어서 믿을만한 사람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장영자씨는 언제 알게 되었는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이씨를 알게된 훨씬 후였다. 어느 날 이씨가 장씨와 함께 찾아와 부인이라며 소개를 시켰다.
-일신 측이 장 여인 부부로부터 실제로 빌어 쓴 돈은 얼마인가.
▲모두 1백57억원인데 돌아온 어음은 5백9억원이었다.
-빌어 쓴 돈의 2배나 어음을 끊어 준 것은 무슨 이유인가.
▲우선 이철희씨 부부의「신분」이 든든했고 이자율이 연20%로 싼데다 이씨 측이『거액의 자금을 동원하면 우리가 자금 출처에 대해 의심을 받게되니 이에 대한 근거를 남기기 위해 일신 측이 2배의 어음을 끊어주면 우리가 이를 은행측에서 할인 받는 형식으로 하겠다』고 제의해 왔기 때문이다.
-일신제강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지난 79년5월 일신제강과는 이름만 같을 뿐 우리와 아무관계도 없는(주)일신이 역시 우리의 주거래 은행인 상업은행 본점에서 부도를 낸 적이 있었다.
이것이 잘못 전해져 일신제강이 부도를 낸 것처럼 되어 단자회사 등으로부터 1백50억원의 강한 압력을 받아 부도위기에 처한 일이 있었다. 당시 구제금융 80억원을 받아 위기를 넘겼으나 이후 일신제강의 자금사정이 악화되었다. 보다 큰 원인은 79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불경기를 예측 못하고 인천공장 등에 남의 돈 4백여억원으로 거액의 시설투자를 했었기 때문이다.
-이씨 부부의 사기행각을 눈치챈 것은 언제인가.
▲지난해 12월17일 이씨에게 담보조로 떼어주었던 견질 어음 50역원이 돌아오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이씨 부부의 자금 사정이 심각해졌다는 것을 알고 견질 어음을 돌린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그들에게 이자지급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총 채무는?
▲모두 1천7백억원이다. 주거래 은행인 상업은행에 6백50억원의 부채가 있고 외환은행·조흥은행 등에도 빚이 있다.
-사원들의 임금·퇴직금 문제 처리는-.
▲생산직 사원에 한해 4월분 임금 3억5천만원이 체불되었다. 현재 상업은행 측과 협의 중인데 임금문제는 무난히 해결될 전망이다. 그러나 퇴직금 문제는 은행측이 확답이 없어 현재로선 해결책을 밝힐 수 없다. <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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