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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우리나라 화석 사랑 28년 … 1만여 점 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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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수억 년 전의 세상과 만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화석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식물의 흔적이 크고 작은 돌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화석의 신비한 매력에 푹 빠진 지 28년째"라는 강원주(52)씨. 그는 한국 화석에 관한 한 국내 최대 규모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수집가다. 집과 시골 농장의 창고를 가득 메운 화석 숫자가 1만여 점에 달한다. 그가 지금껏 학계 연구자들과 정부기관에만 제한적으로 공개해온 자신의 컬렉션 중 일부를 일반에 처음 선보였다.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한국국제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2005 세계박물관문화박람회'(7월 1일~8월 21일)에서다.

"주최 측이 '국내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외국 화석만 즐비하면 되겠느냐'고 하도 채근해서 어렵게 결심했어요. 어린 학생들한테 소박한 한국 화석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기도 해서요."

강씨는 1970년대 말 외국의 자연사박물관을 들렀다가 화석 수집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처음엔 구하기 쉬운 외국 화석을 사모았으나 점차 한국 화석에 매달리게 됐다.

"어떤 분들은 화석에서까지 '신토불이'를 찾느냐고 놀리시는데요, 전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봤어요. 한국 화석을 한국 사람, 한국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어야지 외국에 다 빼앗겨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강씨는 이런 생각 때문에 10여 년 전 일본의 지자체들이 앞다퉈 자연사박물관을 만들면서 "비싸게 쳐줄 테니 컬렉션을 통째로 넘기라"고 수차례 졸라댔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전희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미 일제시대 때 삼엽충 화석 등 귀한 화석과 광물이 일본으로 많이 넘어가 국내에선 볼 길이 없다"며 강씨의 노력을 높이 샀다.

미대를 졸업한 뒤 20여 년 간 미술학원을 운영한 강씨는 자신의 수입을 모조리 화석 사는데 쏟아부었다. 공무원인 남편이 강원도 태백에 부임했던 80년대 초엔 1년 반 동안 당시 집 한 채 값을 화석에 투자하기도 했다.

"화석이 탄광지역에서 많이 나오잖아요. 광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들였어요. 그뿐인가요. 문화재 관련법으로 금지되기 전까진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전국의 도로 건설현장을 누비며 직접 화석을 채취하기도 했는걸요."

"인부들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정과 끌을 들고 암석 더미를 파헤치고 다녔다"는 그는 "어쩌다 두세 달에 한 번씩 화석을 발견할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다"고 했다.

강씨의 꿈은 언젠가 개인 박물관을 여는 것이다. "2~3년 전부터 지자체와 민간에서 자연사박물관을 여럿 세웠어요. 하지만 전시된 화석은 외국 것이 대부분이라 아쉬웠죠. 외국인도 찾아오는 박물관을 만들려면 우리 것을 많이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글=신예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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