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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듣고 귀로 말하는 이어폰 … 들어보셨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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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신두식 해보라 대표가 ‘이어톡’을 들고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어톡은 이어폰 부분에 마이크가 함께 달려 음성이 ‘이관’(코와 귀를 연결하는 관)을 통해 직접 귀로 전해진다. 주변이 시끄러워도 작은 목소리로 선명하게 통화할 수 있다. [신인섭 기자]

-부인 : “여보세요? 오늘도 늦어?”

-남편 : “(노래방에서 동료들과 탬버린을 흔들면서)응. 지금도 혼자 야근중이야.”

-부인 : “그러게. 주변에 아무도 없나 조용하네.”

 바람직하지 않은 사례지만 이런 상황이 가능해질 것 같다. 신두식(46) ‘해보라’ 대표가 내놓은 ‘이어톡(Eartalk·사진)’을 귀에 꼽고 통화를 한다면 말이다.

 이어톡은 입으로 말하고 귀로 상대의 말을 듣는 익숙한 통화의 개념을 가볍게 뒤집어버린 당돌한 제품이다. 사람 음성이 공기를 통하지 않고서도 귓속 ‘이관’을 통해서도 전달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마이크와 스피커가 하나로 붙어있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 말을 하면 ‘음성→목과 연결된 입 내부→이관→고막→귀’로 연결되는 원리다. 일명 ‘귀로 말하고 귀로 듣는’ 통화다.

 신 대표는 “우리 모두가 아는 인체의 상식인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사실을 캐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장점은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작은 목소리로 선명한 통화가 가능하다는 점. 음성이 몸 안에서 직접 전달되기 때문에 외부 소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 붐비는 지하철, 응원 함성으로 뒤덮힌 야구장에서도 서둘러 ‘잠깐만요’를 외치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 태풍이 부는 재난환경, 건설현장 에서도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노인들에겐 보청기 기능도 되고 난청을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신 대표는 “이어톡의 진짜 모토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며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니까 듣는 상대방이 편안하다”고 설명했다.

 이어톡은 지난 9월 정부의 창조경제 성공사례로도 선정됐다. 해보라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창조경제타운을 통해 경영 멘토링을 받고 5억원을 지원받은 업체다.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로 뽑혀 5억원, 특허법인에서 현물투자(1억5000만원)를 받아 총 12억5000만원을 투자금으로 확보했다. 현재 국내외 특허만 70개가 넘는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아이디어를 잡아내 운 좋게 ‘대박’이 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어톡은 14년 동안 ‘3전4기’ 끝에 이룬 성과다. 그동안 창업만 3번, 직장도 두번이나 옮겨봤다.

 경북 문경 출신인 신 대표는 2000년, 닷컴 붐의 마지막 단계에 인터넷 전송장비 벤처를 설립했다. 어릴 때부터 회로를 꾸미는 걸 좋아해 대학도 전자공학과를 택했는데 초고주파 회로설계에 집중해 주로 증폭기나 엠프 개발과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2000년 신규사업 아이템 발굴차 일본 박람회에 갔다가 우연히 스피커 하나로 마이크 기능까지 할 수 있다는 얘길 듣게 됐다. 순간 “그래, 이걸 이어폰에다 접목하자. 마이크를 귓속에다 집어넣으면 쉽게 소음을 막을 수 있겠구나!”라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당장에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른 손톱만한 소형 스피커와 마이크를 만드는 부품기술, 통화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이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이어마이크 통화는 전자회로·재료·기구·음향 등 4개 부문이 합쳐진 ‘종합기술’이 필요한데, 불과 3~4년 전에야 모든 분야의 기술수준이 갖춰졌다고 한다.

 이후 신 대표는 두 번의 사업 실패를 겪었다. 첫번째는 투자 유치를 받으며 지분을 넘긴 게 화근이 됐고, 두번째는 당시 납품처인 하나로통신과 LG사이에 지분 분쟁이 심해지면서 신규사업이 막혀 문을 닫았다. 먹고 살기 위해 2005년 대기업인 효성에 입사하고 중소기업의 연구소장으로도 근무했지만 “항상 머릿속에선 이 아이디어(이어마이크)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2010년 신 대표는 다시 한번 창업했고 2014년 이름을 ‘해보라’로 바꿨다. ‘나도 한번 태양을 보자’, ‘하고 싶은 사업을 해보자’라며 직접 지은 이름이다.

 “돈이 없어서 직원을 못쓰고 7~8개월 동안 혼자서 일을 하기도 했어요. 가족들 맘고생도 많았죠. 하지만 늘 ‘이건 된다’는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해보라는 현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도움으로 실리콘밸리에 미국법인을 세우고 현지 광고를 제작하는 등 해외시장 진출에 시동을 걸고 있다.

 신 대표는 고심끝에 “해외시장이 답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삼성전자·LG전자·SK텔레콤 등 유수의 대기업들이 공동개발 등을 제안해 왔지만 결국 거절했다. 신 대표는 “계약 내용을 보니 기술만 쏙 가져가는 느낌이 들었고, 테스트하는 곳에 같이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더라”라며 씁쓸해 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 교수가 “연구자는 대기업에서 일하다 아이디어만 뺐기는 불쌍한 샐러리맨”이라고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 대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제도나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선 중국의 추격이 위협적이다.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디자인은 많이 떨어졌는데, 이제 성능은 물론 디자인까지 한국보다 나은 것 같다. 미국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투자를 많이 한 결과”라며 “한국 기업들 큰일났다”고 했다.

 단기 목표는 해외 대형 유통점 진입이다. 신 대표는 “스마트폰으로 통화하거나 음악을 듣는 일반 유통시장을 타깃으로 우선 미국의 월마트, 베스트바이에 진입하려고 한다”며 “어떻게 해서든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제품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계획은 아직까지는 순조롭다.

 미국의 창업자금지원 시스템인 ‘퀵스타터’를 통해 미국에서 200억~300억원 정도의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베이나 G마켓, 국내 면세점 등에서도 제휴제안이 들어온 상태다.

 제품은 이르면 오는 1월 미국에서 나온다. 귀에 꼽는 블루투스형, 일반 이어폰과 같은 유선형, 목에 거는 넥밴드형 3가지 유형이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인 화웨이와 오포(OPPO), 통신장비 업체 ZTE에서도 주문을 받았다. 가격은 미정이지만 우리돈으로 블루투스형은 5만원대, 가장 비싼 넥밴드형은 10만원대로 예상된다.

 그는 “요즘은 창업지원이나 경진대회가 앱(애플리케이션)같은 IT(정보기술) 서비스에 치중돼 있다”며 “우리같은 제조업은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취업 이력서에 한줄 넣기 위해 어차피 안될 줄 알면서 창업하는 학생들도 많다”라며 “벤처등록을 하면 기술보증기금에서 5000만원을 대출해주는데 잘못하면 어릴 때부터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어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시장조사기관 등에 따르면 세계 헤드폰·이어폰 시장은 내년에 2억9090만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렷한 음성을 요구하는 음성인식·검색 시장도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신 대표는 이어톡 기술을 ‘구글글래스’같은 스마트안경, 헬스케어 기능을 가진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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