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관계 재?명…부드러운 결말 다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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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교회 사회선교협의회의 성명서사건은 검찰이 환문자 전원을 귀가조처했지만 성명서 하나가 이렇게큰 파문을 일으킨 적도 일찌기 없었지요.
-사실 성명서를 발표한 협의회측도 이런결과는 예상을 못했던 것같아요. 19일 일간지에 성명서의 전문이 보도되자 그때까지만해도 다소 우려를 하면서도 협의회측 일부에서는반가와하는 표정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신·구교와 도산측인사들이 망라된 협의회측이 성명서의 신문보도후 자체안에서 다른 입장들을취하지 않았읍니까?
-대표적인게 박홍신부였지요. 박신부가 전윈의 서명이 아니다. 자신을포함한 일부인사는 문장과 내용의 수정을 요구했다면서 일방적 방표문이었다고 이탈했지요.
-사실 천주교측에선 이번 성명서가 전체적으로 치촐·산만했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었어요.
천주교와 개신교간의 의견차이라고볼수 있지요.

<"뭔가 있구나"낌새>
-검찰의 「진의환문」이 시작되면서부터 초점은 개신교와 특히 도산측이 되지않겠느냐는 설이 나돌았어요.
-검찰이 이 사건에 조사를 시작한다고 공식으로 발표한게 21일 상오10시였지요.그러나 20일 아침부터서울지검 김경회공안부장이 외부와 계속 연락하며 상부에 보고하느라 바쁜 움직임을 보여 『뭔가 있구나』 하는 낌새가 보였어요.
-사실은 20일낮 시내 P호텔에서열린 수사관계관 회의에서 검찰이 이번사건을 맡기로 결정됐다는겁니다.김부장은 이날하오2시쯤 검찰청으로돌아와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고환문대상자를 골라내고 서울지검 수사관 2명을 1조로 환문대상자 9명을 동행해 오도록 지시했다는 접니다.
-수사관들이 소집된 것은 21일새벽6시였어요.
-이번 사건으로 사회부기자둘이 사진기술이 많이 늘었다지요? 좋은 사진도 많던데….
-평소에는 사건부가 사진취재를 도맡았지만 이번에는 달랐어요. 5층 공안부입구까지 카메라를 들고는 도저히 접근이 안돼 조그마한 카메라를 호주머니속에 숨겨 잠입했지요. 마침 공안부안에는 화장실이 없어 연행된 사람들이 화장실을 가려면 반드시 밖으로 나와야했기 때문에 화장실앞에서 서성이면 모두 찍을수 있었어요.
-검찰이 이번 사건을 맡자 경찰은 다소 안도감을 나타냈어요. 지난번 최기직신부를 경찰에서 구속했기매문에 이번에도 경찰에서 손대면 종교계에 너무 인심을 잃는다고 걱정이었던것 같습니다.
-어떤 경찰간부는 이번기회에 『골치아픈「도산」을 검찰이 뿌리뽑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지요.
-조사 첫날인 21일 자정쯤 박홍신부가 귀가조치되긴 했지만 이날 하오부터 도산담담을 위해 남부지청 검사3명이 보강되는등 조사가 확대되지 않았읍니까.
-네 .금경회공안부장을 비롯한 검사전원이 철야를 하고 도산의 총수격인 인명광목사등 환문대상자도 늘어나 22일 아침에는 조사가 꽤 진전된듯한 느낌이었어요.
-22일하오6시쯤 정해창서울검사장이 서간권대검차장·정치근총장 순으로 5분정도씩 보고를 마치고 나와보도진들에게『오늘밤에는 아무 상황이 없으니 푹 쉬라』고 말했지만 검사장의 표정이 낮과 달리 엄청나게굳어져 있어 밤사이에 상황이 없더라도 뭔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밤10시에 설령탕>
-정치량총장은 이날 저녁 자정이넘도록 퇴청을 미루었어요. 저녁10시쯤 비서실에서 퇴청한다고 차량을 대기시키더니 금방 취소하더군요. 정총장은 서동권대검차장검사, 정해창검사장, 금경회공안부장과함께 이사건의 조사 첫부분부터 정밀분석과 검토를 계속했다고 알려지고 있어요.
-밤10시20분쯤 실령탕으로 저녁식사중인 서차장을 만났더니 표정이 무척 긴장해 있더군요. 기자가 검찰청의 분위기가 무척 무겁더라고 했더니 서차장은 『안 무서우면 이시간에여기서 설렁탕을 먹겠느냐』고 반문하더군요.
-이때부터 검찰내부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추측이 나돌았어요. 청사주변에서는 검찰에서도 누구누구는 강경파고 어떤이는 온건파라는 말도 있었고….
23일상오 갑자기 권호경목사등 3명의 구속방침이 흘러나왔는데 어찌된 겁니까.
-검찰의 허수(허삭)작전이라는 추측도 나오더군요. 왜냐하면 그동안 이사건에 관한한 아웃사이더였던 지검의 고위간부가 기자들앞에서 거의 공식적으로 밝혔으니…. 불과 6시간후에는 전원 귀가시킬것을 이 고위간부가 몰랐을 리가 없었을텐데 말못할목적이 있지않았나 하는 추측이 나왔어요.
-이 고위간부는 발표가 된후『검찰이 구속검토를 한것은 사실이고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린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했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요.
-이에대한 해석도 구구합니다. 일설에는 보안을 위한 연막전술이었다는 말이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강경파들이 구속으로 몰고가기위한 대언론 로빙이었다고도 하더군요.
-강·온 양론이 없던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고위실무급 대책회의등 23일의 정책적여과과정에서 「귀가조치」로결판났다는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 환문된 사람들에게「형사처벌유보」라고 했는데, 이색적인 표현이 아닌가요.

<"허실작전"추측도>
-아마 강한 경고적인 의미 같아요. 그렇다고 다음에 처벌한다는 의미는 아닌것 같고…. 발표후 김경회공안부장은「유보」도 검사가 할수있는 하나의 결정이라고 말하더군요.
-이번에 환문대상자중 협의회간사간영초씨(28·여)는 출두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검사들은 불문에 붙일것이라고 보더군요. 김부강검사는 검사가 환문한이상 출두하면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가서 데려오지는 않겠다고 말했어요.
-발표후 공안부장실에 모인 서울지검 공안부검사 전윈은 이틀이나 밤샘을 해서인지 무척 피로한 가운데서로간에『어려운 일이었다』고 위로하더군요.
-귀가한 인명진목사는 자신의 구속을 검토하고 있다는 석간지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어요. 인목사는 며길후 사태가 진정되면 허심탄회하게 깊은 얘기를 나누자고 하더군요.
-김승★신부도 『할말은 검찰에서 다했으니 검찰발표로 내의견을 대신하라』고 좀체로 입을 열지 않더군요. 다만『성명서가 공식으로 배포된것은아니다』는 것은 멎번씩 강조했죠.
-그동안 시민들의 반응도 대단했다지요.
-동대문성당엔 협박이나 희롱투의전화가 잇달았대요.
-한창 조사가 진행되던 22일낮 검찰총장실에는『당장 구속시키지 뭘 꾸물거리느냐』는 항의전화가 오더군요. 신문사에 걸려오는 전화는 비교적 강·온이 엇갈렸지요.

<항의전화도 빗발>
-검찰에서는 사건의 마무리를 놓고 태산명동 서일필격이 되었다고 평하면서도 흐뭇한 표정이었읍니다.
-구속이란 법적처단보다 포용과 감화로 끝냈다는데서 오는 흐뭇함이겠지요. 특히 종교가 개입되는 문제는검찰고유의 법률판단보다 파급영향을고려한 정책결정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겠지요.
과거에도 정-교의 마찰은 있었읍니다만 이번사건도 역시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 마찰을 없애야한다는 교훈을 재확인한 셈이지요.
-그리고 우리사회가 폭력행위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용납되지않고 반미감정의 표현이나 그에 따른 행동이 일반국민의 호응을 받을수 없다는것을보여주었다고 할까요….
-어쨌든 부드러운 방향으로 희생자없이 사태가 수습된 것은 다행한일입니다.<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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