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문욕례의 「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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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직자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대한교련은「수도헌장」을 제정할 모양이다.
거기에 학생들로부터 존경받고 학부모로부터 신뢰받는 교육자상을 확립하고, 아울러 교육자의 권리와 의무를 선언적으로 규정하리라고 한다.·
따라서 「사도혜장」은 교육자가 지킬 책임과 의무의 규범을 법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것이 오늘의 사회현실에서「타락된 사도」가 논란되면서 제기된 불가피한 요구일 것이다.
그러나 솔직이 말해서 그런 요구속에 제정되는 「사도헌장」이 과연 얼마나 스승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교육자의 정신적 호응을 유발하며 실효있는 것이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교육자들이 지금까지 사도헌장이 없어서 이사회속에서 권위가 없고 존경받지 못하며 자신감이 없는가를 따져보더라도 현실은 직감할수 있다.
헌장과 명문이 중요한건 아니다. 공연히 복잡한 규정과 굴레를 많이 만들어 놓는것은 오히려 폐가 될수도 있다.
과거에도 繁文縟禮(번문욕례)의 폐를 우리는 교육의 울타리 안에서도 수차 보아왔다.
60년대초에 저극적으로 번졌던「6학년 담임헌장」운동도 었었다. 과외수업과 잡부금을 배격하며 건전한 학풍을 일으키겠다고한 국민학교 교사들의 자성운동이었다.
.60년대 후반엔 「벽지교사의 헌장」이란것도 있었다. 벽지교사의 특수성 속에서도 자랑과 긍지를 느끼며 지역사회의 어둠을 밝히겠다는 인간적결의가 아로새겨진 헌장이었다.
조금 포괄적이지만「국민교육헌장」도 있다. 국민헌장과 오육헌장을 종합한 이 헌장은 너무 많은 덕목을 나열한 점으로서도 이미 정평이 나있다.
그런 덕목들은 결코 소홀히 하거나 배척될 성질의 것은 아니나 현실적 실천에서는 가끔 명목에만 그친 무의미한 문자의 나열이라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사회의 모든 성원들에게 그 현장속의 의미들이 생명있게 감지될수 없는 현실로해서 오는 괴리요 이반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성원 모두가 화합하며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공허한 주장이 아니라 삶의 진실이 있는 주장이어야한다. 허식과 변의주의가 개재되면 안되는 것이다.
이미 50년대에 「어린이헌강」은 있었으되 지금 진실로 우리 어린이들의 인격이 존중되고 참된 애정으로 키워지고 있는가를 냉정히 반성해야한다.
지금 제정되어 선포를 기다리고 있는 「노인헌강」도 마찬가지다. 헌장에서 어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그들에대한 존경과 브살핌이 아무리 관언적으로 강조된다고 그것이 사회생활 가운데서 참답게 실천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노인들은 현실적으로 시내버스의 안내양에게 떠밀리는 신세속에서 인간적인 수모를 겪고있다.
더 중요한것은 사회가 55세정년제로써 활동의 장에서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하는 현장에서 밀러나야하는 사회제도가 엄존하는데 존경과 보삼핌을 강조하는「헌강」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문자의 유희일뿐이 아닐까.
그런 현실을 돌아보면서 「사도헌장」의 제정이라는 소식에 접하면 우리는 거기서도 기대와 희망의 증거를 발견하기보다 또하나의 가포의 풍조를 보게되는 것같다.
이윤상군사건에서 노출되었던 사도의 타락과 최근의 돈봉투사건으로 표면화된 학원부조리를 물론 그냥 놓아둘수는 없다.
나라의 장래와 사회의 정화가 시급한 시점에서 단합된 의지로 염결의 사도를 정립하는 일은 지금 우리사의 전체의 과제이기도하다.
그점에서 「스승의 날」을 부활한 정부의 의도는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새삼 「사도헌장」의 제정으로 허식과 번잡만 조장하는 불행한 사태는 제발 피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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