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선 보류요구 「도산」측서 일방발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15일 발표된 한국교회 사회선교협의회 성명은 도시산업 선교회측이 일방적으로 작성해 배포·발표 됐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얼고있는 가운데 검찰이 성명서발표관련자들에 대한 조사에 나섬으로써 교계가 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한국교회 사회선교협의회의 성명이 발표되기까지 작성경위와 이를 둘러싼 쟁점 및 교회와 기자들에게 배포된 경위 등을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알아본다.

<회의소집>가톨릭 관계 신부들이 『15일 상오7시 상조회관(서울 돈암동)에서 최기식 신부 문제 등에 관한 회의가 있으니 참석해달라』는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 14일 하오.
통보 받은 교직자들은 15일 하오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는 도산측에서 총무인 권호경 목사와 부회장인 조지송 목사(영등포 노몽교회) 조화순 목사(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회) 등 10여명이 나와 있었고 가톨릭측에서 지학순 주교와 김승훈 신부를 비롯한 10여명 등 모두 23명이 나와있었다.
회장인 김 신부는 이 자리에서『여러분의 의견을 듣고싶어 나오시게 했다』고 말했고 도산측 관계자가 미리 작성한 듯한 성명서 초안 사본을 한 장씩 돌렸다.
이때 지학순 주교가 초안을 읽어본 후『내용이 너무 치졸하고 파격 하다』며 상당부분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지 주교는『목적이 아무리 정당해도 방법이 정당하지 않으면 정당한 주장이 될 수 없다』 고 말했다는 것이다.
다른 신부들도 비슷한 의견을 말했고 『미국산 쌀 도입 문제와 알래스카산 연어통조림 수출 기도 사건은 이미 결말이 난 지난 일들인데 왜 이런 일을 들먹여 싸우려하느냐』는 의견을 말했다. 또『화해와 믿음을 바탕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성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신부도 있었다.
이 같은 반대의견에 따라 김 회장은 각자에게 돌려줬던 성명서초안을 다시 거둬들이고 『성명에 포함시킬 좋은 의견들이 있으면 각자 써내 달라』고 말했다.
참석한 신부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종이에 써냈다.
이를 하나씩 읽어본 도산측 참석자들은『내용이 너무 온건하다』며 『이런 내용으로야 어떻게 성명서가 될 수 있느냐』고 불만을 표했다.
회의는 『가톨릭측이 써낸 내용을 참작해 수일 후 다시 모여 성명서를 작성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끝났다.
당시 지 주교는『지금 작성한 초안은 가톨릭의 의사와 다르고 완전한 성명이 아니니 결코 발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고 신부들은 도산측으로부터『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헤어졌다.
그 후 아무연락이 없다가19일 신문을 보고서야 가톨릭측은 도산측에서 약속을 어기고 성명을 발표해 버린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 카톨릭신부들의 주장이다.

<배포경위>문제가 된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서명서는 17일 상오10시쯤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901호실 협의회 사무실에서 기자들에게 배포됐다.
8절 모조지 양면에 타이프라이터로 인쇄된 이 성명서에는「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부제가 붙었다.
당시 협의회간사 최혁배씨(31)는『누구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담당직원인 천영초씨(29·여)를 소개했다.
천씨는『가자들이 틀림없느냐』고 신원을 확인한 뒤 책장 위에 쌓였던 2백여장의 성명서를 한 장씩 가져가도록 했다.
천씨는 이 성명서가 15일 열린 지도·상임위원연석회의에서 위원 35명이 참석해 결정한 것이므로 협의회의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16일 하오4시쯤 협의회의 측은 성명을 발표한다고 각 언론기관에 연락, 기자들이 찾아가자 협의회간사 최씨는『문안작성에 이견이 있어 오늘은 발표하지 못한다. 내일 상오10시까지 발표할 예정이나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며 기자들을 돌려보냈다.
17일 상오 협의회사무실에서 성명서를 배포한 뒤 보도진들이『보도되기 곤란한 내용이 많다』고 말하자 협의회 측 직원들은『외신기자들을 불러 발표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직원들은 19일 신문보도가 나간 뒤 20일 기자들과 만나『보도가 제대로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성명 발표 후>김승훈 신부는 19일 상오 경찰에 자진출두,『성명서 내용이 가톨릭 신부들의 뜻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히 밝히고 자신의 뜻에 의해 유인물을 제출한다는 시인서를 쓰고 지장을 찍은 뒤에 돌아갔다.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를 주재한 회장 김승훈 신부(동대문성당)는 21일『협의회의 성명서는 공시적인 발표가 아니며 17일 하오9시 TV뉴스에 방영돼 일반에게 알려지게 된 것』 이라고 경위를 설명했다.
김 신부가 주임신부로 있는 동대문성당에서는 18일 주일 미사때 이 성명서에 앞서 발표됐던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명의의 성명서를 신도들에게 배포했을 뿐 문제의 성명서는 나누어주지 않았었다.
김 신부 등은 성명의 내용도 15일 회의에서 신부들에게 돌렸던 초안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주 파격하다고 지적됐던 몇 귀절만 빠졌을 뿐이었다는 것.
신부들이 도산측에 영문을 따졌더니 『7백부를 이미 인쇄했는데 발표를 하지 않고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할 뿐이었다.
이 신부는『도산측의 과격한 사람들에 의해 이용당한 기분이었다』며 『가톨릭측에서는 한 사람도 성명서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명이 발표된 후 김 신부는 협의회사무실에 남아있던 5백80여장의 성명서를 동대문경찰서에 전달, 성명 내용에. 의사를 달리하는 가톨릭측의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불참자>불참자 19명은 다음과 같다.
김병상 김경락 김찬국 김말룡 김성용 김소영 김용복 김준영 서남동 안광수 양홍 이창복 이국선 정양숙 이종창 권진관 조승혁 조용술 함세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