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휴대전화 왜 못 찾나 했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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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4일 서울 청량리경찰서에 구속된 분실 휴대전화 전문 수거업자 전모(33)씨 등으로부터 압수한 휴대전화. 휴대전화는 지난해 10월부터 분실 신고된 것들로 전씨 등이 택시기사 등을 통해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정동 기자

회사원 이모(31)씨는 5월 초 서울 신촌에서 택시를 탔다가 낭패를 봤다. 구입한 지 1주일도 안 된 68만원짜리 최신형 휴대전화를 택시 안에 두고 내린 것이다. 이씨는 급히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안 됐다. 이동통신회사에 한 분실신고도 소용이 없었다. 두 달 뒤인 7월 4일. 이씨는 자신의 휴대전화가 중국으로 팔려나갔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 전문조직 통한 밀거래=이씨의 경우처럼 분실된 휴대전화 중 상당수가 장물업자들에 의해 중국과 동남아 등지로 밀반출되고 있다. 휴대전화 분실 건수가 매년 크게 늘어나면서 암거래 시장 규모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03년 358만 대, 지난해에는 458만 대의 휴대전화가 분실된 것으로 신고됐다. 정보통신업계에선 분실된 휴대전화 중 20~30%는 외국으로 불법 유통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최근엔 중국 등에 팔기 위해 분실 휴대전화만 전문적으로 사들이는 조직까지 생겼다. 4일 서울 청량리경찰서에 구속된 전모(33)씨 등 3명은 지난해 10월부터 택시기사 등에게서 승객들이 잃어버린 휴대전화 2900여 대를 헐값에 사들인 뒤 이 중 2300여 대를 수출업자를 통해 중국에 팔아 1억6000여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전씨 등은 서울 시내의 택시기사들이 모이는 주유소 등에 '분실 휴대전화 산다'는 광고 명함을 돌려 전화를 수집했다. 또 중국동포 등이 자주 찾는 중국 관련 전문 사이트에 광고를 올려 중국 현지 판매책을 통해 팔아넘겼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러시아의 판매책과도 연결됐다고 진술하고 있어 수사를 확대키로 했다"고 밝혔다.

◆ 간단한 조작으로 사용=국내에서 분실된 휴대전화가 중국 등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시중 가격의 절반 정도로 디자인과 성능이 좋은 기기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태국.인도네시아 등의 일부 지역은 한국과 똑같은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분실 휴대전화의 전자적 고유번호(ESN)만 조작하면 현지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

경찰은 국내의 분실 휴대전화 수거업자와 수출상,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 있는 한국인 수입상들이 삼각 고리로 연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부가 3월 휴대전화 인증서비스 제도를 시행하면서 분실된 최신형 휴대전화는 국내에서 복제가 불가능해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대부분이 중국 등지로 넘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강현.박수련 기자 <foneo@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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