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임팩트' 우주쇼 성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 4일 딥 임팩트의 충돌체와 혜성 ‘템펠1’이 충돌하는 실험이 성공하자 미 항공우주국(NASA)의 프로젝트 책임자들이 부둥켜안고 기뻐하고 있다. [패서디나 AP=연합]

긴 꼬리를 달고 우주를 질주하는 혜성의 신비와 태양계의 생성 비밀이 드러날까. 미 항공우주국(NASA)의 딥 임팩트(혜성과의 충돌) 실험 성공으로 과학자들은 흥분해 있다. 학자들은 이번 실험을 통해 태양계 생성 초기의 비밀을 밝힐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혜성이 46억 년 전 태양계가 탄생할 당시 물질들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영화가 현실로=딥 임팩트라는 이름은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위기의 순간을 그린 공상과학영화(1998년 개봉)의 제목에서 따왔다. 실험 비용은 3억3300만 달러(약 3400억원). 이번 실험이 성공함으로써 영화에나 나옴 직한 공상의 세계가 현실이 돼 버렸다.

임팩터(충돌체)는 미국 독립기념일인 4일 오후 2시52분(한국시간) 당초 예정했던 시간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혜성 템펠1과 충돌했다. 순간 이 실험을 주도해 왔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제트추진연구소는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찰스 엘라치 연구소장은 "우리는 신기원을 이룩했다"며 환호했다.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이 장면을 대형 야외 스크린으로 지켜보던 1만여 명의 인파도 함성을 질렀다.

◆ 황홀한 우주쇼=임팩터가 모선인 딥 임팩트 플라이바이선에서 분리된 것은 3일 오후 3시7분이었다. 충돌하기 23시간45분 전이다. 임팩터는 시속 3만7000㎞의 맹렬한 속도로 80만㎞를 더 날아가 템펠1의 하단부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이번 실험은 혜성과 충돌체, 우주선 본체 등 세 개의 물체가 모두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진행됐다. 고속으로 발사된 하나의 총탄이 두 번째 총탄을 발사해 세 번째 총탄을 맞히는 정도의 정밀성이 요구되는 실험이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지는 우주불꽃놀이쇼였다. 모선에서 발사된 이후로는 더 이상 임팩터를 조종할 수 없어 충돌 실험의 성공 가능성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임팩터는 충돌과 함께 산화했다. 충돌 직후 혜성 템펠1은 평소보다 6배나 더 밝게 빛났던 것으로 관측됐다. 충돌시 TNT 5t이 폭발하는 충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혜성이 임팩터로 받은 충격은 모기가 대형 항공기에 부딪치는 정도여서 혜성은 계속 현재의 궤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했다.

◆ 충돌 장면 촬영 성공=딥 임팩트 모선은 임팩터와 혜성과의 충돌 장면을 8000㎞ 떨어진 곳에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충돌 직후 혜성에서 얼음과 먼지, 파편 조각이 섞인 거대한 가스구름이 일어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모선은 앞으로 혜성에 500㎞까지 접근해 촬영을 계속할 예정이다.

임팩터에 설치된 카메라도 충돌하기 3초 전까지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혜성의 모습을 생생히 잡아 지구로 보내 왔다. 사진에는 분화구와 산봉우리, 빙하 추정 지형 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딥 임팩트 프로젝트 수석 연구원인 마이클 아헌은 "현재까지 받은 사진은 전체의 10%밖에 되지 않는다"며 "아직 받지 않은 깜짝 놀랄 만한 사진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 수수께끼 풀릴까=과학자들은 이번 충돌로 혜성 표면에 작게는 집채, 크게는 축구장만한 2~14층 깊이의 구덩이가 파였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구덩이의 크기나 모양, 구조, 충돌 과정에서 나오는 물질들은 수년간에 걸친 분석 과정을 거치게 된다. 혜성 핵의 밀도가 어느 정도인지, 내부 물질이 모래처럼 고운지 아니면 보다 큰 잡석 부스러기가 느슨하게 모여 있는 것인지 등의 수수께끼가 풀릴 수도 있다.

혜성은 우주의 역사를 담고 있는 타임 캡슐로 여겨지고 있다. 지구에 우주의 어느 행성과도 달리 물이 유난히 풍부한 것은 물을 함유한 혜성이나 소행성과 충돌한 덕분인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혜성에 있던 복합 유기물 분자들이 지구상에 생명을 탄생시키는 모체 역할을 했다는 학설도 있다.

한경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