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 일대는 예부터 봉은사의 사하전이었다. 조선시대 전국 사찰을 통제하던 수사찰(首寺刹)인 봉은사는 왕실로부터 방대한 땅을 하사받았다. 절 앞 벌판은 승과고시가 열려 승과평(僧科坪)으로도 불렸다. 서산대사.사명대사도 여기서 승과에 급제했다.
삼성동의 운명이 뒤바뀐 것은 강남 개발이 시작되던 1970년이다. 이 무렵 조계종은 총무원 건물을 세우기 위해 돈이 아쉬웠다. 정부는 강북 도심의 공기업들을 빼내기 위한 넓은 땅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삼성동 허허벌판 12만 평이 평당 6200원에 팔렸다. 이 자리에 한국전력과 무역협회가 옮겨왔다.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서운선사는 땅 매각에 반대했다고 한다. 출가 전 속세에서 서울전매청장까지 지내 세상 안목도 밝았던 인물이다. 그가 경내에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분신이라도 하겠다"며 버티자 조계종은 새 주지까지 몰래 임명해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한다. "지옥에 가서라도 땅 판 친구들이 그곳에 있는지 꼭 봐야겠다." 서운선사는 열반 직전까지 못내 아쉬워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이 있는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 2만5000평이 공기업 이전에 따라 매물로 나온다. 눈독 들이는 기업이 많아 평당 1억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35년 만에 1만 배 넘게 뛴 셈이다. 수조원을 날린 조계종으로선 그야말로 땅을 칠 노릇이다. 국내 역사상 최악의 부동산 테크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불가에선 "성공을 통해 자비를 칭송하기보다 실패에서 당신의 손길을 느끼도록 하소서"라고 기도한다던가. 그래서인지 오늘도 봉은사 부처님은 여전히 미소짓고 계시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