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안사요… 하루에도 수십 차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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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r이웃은 좀 더 입도록 하다 빨아야 하나, 아예 생각난 김에 다 빨아서 옷장 속에 겨울옷과 함께 정리를 해둘까.』혼자 중얼거리면서 이 방 저 방에 제멋대로 걸려 있는 가족들의 옷가지들을 걷어서 내려놓는데 딩동 딩동 요란스러운 벨소리가 난다. 누구세요』나는 내 일이 방해받는 것이 싫어 짜증스레 대답했다.
『○○○화장품예요』라 답변.
『네, 지금 바쁜데요. 필요한 것 없어요.』매정하게 잘라도 몇 차례고 부득부득 피부 손질을 해준다면서 문을 밀고 들어서는 것이었다.
원래 화장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화장품 판매원 아줌마들과는 그리 오갈 일이 많지 않은데도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런 곤욕(?)을 치르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 아줌마들과 미용 사원들의 판매 작전도 한층 치열해지는 모양이다. 워낙 화장품의 가짓수가 이것저것 많다 보니 골고루 다 갖출 수가 없다. 화장수·로션·크림 정도만 들여놓고 딸아이의 베이비로션과 아빠의 스킨 하나만 사도 몇 만원이다.
그런데도 화장품 외판원들은 며칠만에 한번씩 피부 손질을 해준다며 미용사원을 앞세우고 들이닥친다. 마사지 한번 해 주고는 이것저것 내놓으면서 꼭 필요한 것들이니까 사라는 것이다. 화장품 그릇을 이것저것 열어보고 무엇도 없고 무엇도 없으니 최소한 기초적인 것은 다 갖춰야 되지 않느냐는, 이쪽을 아주 무시하는 말투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피부가 나빠져 파삭 늙어버릴 것 같이 느끼게 한다.
또 타사 제품이라도 있으면 왜 이걸 바르느냐, 자기네 것이 훨씬 좋다면서 타사를 깎아 내려가며 반감을 느낄 정도로 자신이 취급하는 제품을 선전해 댄다.
현대는 물론 자가 선전의 시대라지 만 소비자가 자신의 피부에 맞게 선택하고 가격도 알맞은 것을 골라 쓰는 것일 진대 은근히 겁을 주면서 지나친 강매를 하는 분위기가 정말 피곤을 느낄 정도다.
요즈음 아파트에 찾아오는 외판원이 취급하는 상품의 종류는 정말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고 또 많다.
각종 출판사에서 수없이 나오는 월부책 세일즈맨, 세탁소 종업원, 바퀴벌레 박멸회사, 고물장수, 각 회사의 화장품 판매원, 야구르트 배달원 등 하루에도 수없이 찾아와서 울려대는 벨소리에 오후가 되면 짜증이 난다.
아무리 광고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집 지키는 주부들도 낮에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누구세요, 안 사요』소리를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반복해야 되니 목이 아프고 나중에는 짜증이 난다. 이런 것도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도시의 공해가 아닐는지? 정말 조용히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내부로부터 솟아나는 요즈음이다. <대전시 가상동 주공 아파트 34동3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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