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해는 수행, 황병서는 영접 … 2인자 '권력 분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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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9일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부대를 방문해 검열비행훈련을 지도했다고 30일자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현지지도에는 최용해 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이 동행했다. 미그-29기 전투기 조종석에 탄 김 위원장이 군 관계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오일정 당 부장

북한 권력의 핵심 그룹에 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수행하는 면면에 변화가 생겼다. 실세 간 위상 변화도 드러나고 있다. 발목근육 손상으로 공개활동을 중단했다 복귀(14일 노동신문 보도)한 이후 보름 남짓한 기간의 일이다. 40일의 공백기에 평양 권력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한·미 정보 당국은 추적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건강이상 이전엔 건설 현장에 가거나 군 훈련을 참관할 때 황병서 총정치국장이나 최용해 노동당 비서 같은 핵심 실세를 대거 수행토록 했다. 현장에선 공장 지배인이나 군 사령관이 영접했다. 하지만 통치 일선으로 복귀한 후엔 양상이 바뀌었다. 북한군 대연합 부대 간 훈련 참관(24일 보도) 때는 최용해 노동당 비서와 오일정 당 부장이 수행했고, 현지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맞이했다. 황병서의 역할이 ‘수행’에서 ‘영접’으로 바뀌었다. 새로 지은 군인식당 방문을 전한 29일 노동신문 사진에서도 황병서는 김정은과 그를 수행한 최용해를 맞이하는 위치에 섰다.

 건강이상 이전 김 제1위원장을 거의 빠짐없이 수행하던 최측근 마원춘 당 부부장도 평양애육원 방문 때 영접조에 속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주요 군사훈련 또는 군부가 건설을 책임진 경우엔 군 최고실세인 황병서나 건설총책인 마원춘이 ‘김정은 맞이’를 직접 챙기는 쪽으로 교통정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용해의 재약진이 두드러진다. 김정은의 축구경기 관람을 전한 29일 조선중앙TV 보도에는 최용해의 이름이 수행원 중 제일 먼저 나왔다. 지난 4월 말 황병서에게 군 총정치국장 직을 내주고 당 비서로 불려온 ‘좌천성’ 인사 이후 첫 서열 역전이다. 같은 날 관영매체들은 최용해를 일제히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호칭했다.

 그동안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황병서가 총정치국장에 임명되면서 최용해의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도 넘겨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해 왔으나 예상이 빗나갔다.

 최용해의 최측근 자리 탈환을 ‘빨치산’(북한이 주장하는 김일성 항일운동 세력) 후손의 부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일성과 친분이 두터웠던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란 점에서 ‘시련은 있지만 몰락하지 않는다’는 지위를 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전면 복귀 후 단골 수행하는 오일정 당 부장은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다. 또 부총참모장으로 군 실세인 오금철은 오백룡 전 조선인민혁명군 사령관의 아들로 파악된다.

 대북 정보관계자는 “김정은의 후계권력 구축에 청년조직을 동원해 핵심 역할을 한 전용남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장도 전재선 전 인민무력부 부부장의 아들”이라고 전했다. 북한 권력 3대 세습 과정에서 실세그룹도 출신 성분을 토대로 편성되는 형국이다.

북한의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보다 적극적인 대외행보를 벌이는 정황도 감지된다. 아프리카 순방길에 올라 지난 23일 첫 방문지인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 도착한 소식을 노동신문은 1면에 공항영접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바로 옆에는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과의 회담 소식이 별도로 실렸다. 콩고 등 순방 소식을 북한 관영매체들이 비중 있게 싣고 있다. 단순한 ‘얼굴마담’에서 김정은을 대신해 대외의전을 총괄하는 쪽의 변화가 40일 공백 과정에서 결정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건강 문제와 관련해선 관측이 엇갈린다. 30일 노동신문에는 미그-29기 조종석에 앉은 모습이 실렸다. 동체에는 조종사들이 쓰는 붉은색 철제 사다리 말고는 다른 장비가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직에 가까운 사다리를 올라갈 정도로 호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은 28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재발 가능성과 후유증을 거론했다. 회복 중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줄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드러나고 있다. 지팡이도 여전히 들고 다니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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