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투기적 수요가 아파트 가격 뛰게 한 주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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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주성 국세청장이 1일 전국 지방국세청 조사국장을 불러 부동산투기 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국세청이 부동산투기 억제에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은 특히 서울 강남지역에서 가격이 급등한 아파트에 대한 조사에서 아파트 구입자의 58.8%가 다주택 보유자(3주택 이상 보유)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국세청은 이로 인해 다주택 보유자의 투기적 수요가 아파트 가격상승의 주범임이 확인됐다고 보고 있다.

◆ 강남 아파트는 투기의 대상=국세청이 2000년부터 올 6월 말까지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9개 아파트단지 거래 내역을 조사한 결과 아파트 취득자 10명 중 6명이 다주택 보유자였다. 특히 다주택 보유자의 비중이 60%를 넘어선 아파트단지가 조사대상 9개 중 5개였다.

강남구 대치동 개포우성2차아파트는 2000년 다주택 보유자의 비중이 53.4%였으나 올 6월 말 현재 63%로 증가했다. 2002년에 이 아파트를 산 사람 중 70% 이상이 다주택 보유자였을 정도다.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1단지도 2000년 취득자 중 다주택 보유자는 56.7%였으며 이 비중이 지난해 47.6%로 떨어지더니 올해 다시 60.4%로 올랐다.

최근 강남 아파트 수요는 대부분 투기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입증하는 결과라는 게 국세청의 판단이다.

이들 9개 아파트단지의 평균 가격도 5년 새 2.82배 수준으로 올랐다. 고덕주공1단지 15평형은 이 기간 중 1억6500만원에서 6억4000만원으로 올라 가장 높은 상승률(3.88배)을 기록했다. 개포우성2차 45평형은 6억1500만원에서 15억3500만원으로 9억2000만원 올라 액수로는 가장 많이 상승했다. 한상률 조사국장은 "3주택 이상 보유자가 전체 거래량의 60%에 육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통계의 정확성을 위해 3~4차례나 조사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 투기 수요에 대한 고강도 조사=국세청은 강남 아파트의 투기적 수요를 집중 조사하면 이 중 상당수가 매물로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최근 급등했던 이 지역 아파트값이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판교급 신도시 2~3개를 새로 공급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는 게 국세청의 계산이다. 명의 위장을 한 사람을 제외하더라도 지난해 말 현재 3주택 이상 보유 세대(부부 합산 기준, 임대사업자 포함)는 18만874세대로, 이들이 보유한 주택은 75만1820채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국세청은 직원의 60%에 달하는 9700명을 부동산투기 조사에 투입할 정도로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조사대상을 당초 계획했던 '최근 1~2년 새 보유주택수가 늘어난 사람'에서 '2000년 이후 주택수가 늘어난 사람'으로 대폭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특히 법인이 회사자금을 아파트 구입에 전용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투자 원금까지 세금으로 추징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인 자금을 빼돌린 것이 드러나면 매출을 누락한 부분에 대해 법인세(30%)를 물고, 자금 유용분에 대해 소득세(40%) 등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최근 가격급등 지역의 경우 임대사업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주택 보유자 대부분이 투기용으로 아파트를 샀다고 본다는 의미다. 최근 가격이 급등한 지역의 경우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클 뿐더러 재건축 아파트나 대형 아파트 위주여서 월세 등을 받는 임대사업에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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