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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동창 5명 '청년 사장'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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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문구.사무용품 유통업체 '그린파인' 대표 김광재(22)씨는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오봉산 앞자락에 자리 잡은 법무부 서울소년창업보육원을 찾았다. 고봉정보통신고(구 서울소년원)와 담이 맞닿아 있는 창업보육원은 김씨를 불량 청소년에서 어엿한 기업인으로 변신하게 한 마음의 고향이다. 창업보육원이 지난달 28일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주는 '대한민국생산성대상'의 최우수상을 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이곳을 거쳐간 '동창생 사업가'들과 함께 들렀다.


오른쪽부터 김광재·황찬·김성철·권남형·이남영·모광희씨. 김성철씨는 '푸르미 카서비스'에서, 모광희씨는 액세서리 전문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윤영남군은 강의하느라 함께 찍지 못했다. 의왕=김상선 기자

"불량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 들어온 곳이 바로 옆의 소년원이었죠."

김씨는 고3이던 2001년 다른 사람의 자동차를 훔쳐 몰다 법원에서 보호처분 2년을 선고받고 소년원에 수용됐다. 잘못을 곱씹고 있던 김씨는 2002년 6월 소년원생의 사회진출을 돕기 위해 법무부가 창업보육원을 설립하자 선뜻 지원했다. 15개 소년원에서 선발된 모범원생 45명과 함께 6개월 동안 컴퓨터 편집디자인을 배웠다. 성실한 학업 태도 덕분에 보호기간이 14개월로 줄었고 김씨는 2002년 12월 고향인 포항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가족의 반응은 냉담했고 하루 만에 김씨는 창업보육원을 다시 찾았다. 보육원 강사가 운영하던 전자출판업체에서 7개월간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2003년 7월 독립의 기회가 찾아왔다. 창업보육원이 유통업체 창업을 제안한 것이다. 한 독지가가 서울 반포동의 사무실을 무상으로 빌려 주겠다고 나섰고 창업보육원은 컴퓨터와 책상 등 집기 일체를 지원했다. 그러나 소년원 출신이라는 것은 멍에였다. "만나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죠".

김씨는 당당하게 부딪치기로 전략을 바꿨다. 스스로 소년원 출신 사업가라고 밝히며 뛰어다닌 지 2년. 이제 직영점 2곳과 지점 2곳, 직원 25명을 거느린 어엿한 사장이 됐다. 한 달 매출은 3500만원 선.

김씨 이외에 이날 창업보육원을 찾은 사람 중 기업대표는 4명.

2001년 소년원 출신 벤처 1호 회사로 유명해진 ㈜바인텍의 윤영남(18)군은 요즘 매일 창업보육원을 찾아 2시간씩 네트워크 전문 기술을 강의하며 후배들을 격려하고 있다. 윤군은 소년원 후배 2명과 함께 네트워크를 정비해 주고 월 15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창업보육원의 빈 사무실에 둥지를 튼 경우도 있다. 권남형(19)군은 '푸르미 카서비스센터' 사무실을 열었고 황찬(20)군은 명함.카드.플래카드 제작 전문업체 '엔씨위즈'를 설립했다. 이남영(17)군은 지난 5월 액세서리 전문점 '네티코디'를 창업했다. 이들 세 사람은 7000만원을 후배들의 창업기금으로 적립해 놓고 있다.

창업보육원 동창생인 이들 여섯 명은 처음으로 함께 만나 소년원 담장을 따라 산책하며 1시간 동안 사업 경험을 나눴다.

모임이 끝날 무렵 맏형격인 김씨가 "성실한 모습으로 주위 분들에게 과거 우리의 모습을 잊게 해 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배들은 "한때의 실수를 인생의 실패로 생각하지 않습니다"고 힘차게 말했다.

문병주 기자 <byungjoo@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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