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논란" 속에 주일 미사 착잡한 천주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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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무겁고 착잡한 분위기 속에서 집전된 주말미사였다. 문부식·김현장 등 미문화원방화사건관련자들의 검거 충격에 이어 이들의 은신 관련 신부들에 대한 경찰의 수사착수 소식이 전해진 4일, 문제의 원주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명동성당, 서울천주교 한강교회 등 전국 천주교회에서는 부활절을 1주일 앞둔 「예수성지 주일」 미사가 진행됐으나 한결같이 침울한 가운데 진통을 겪는 모습이 역력했다.
성당마다 이사건의 경위를 거론하는 신자들이 많았고 신부들은 교회의 입장을 밝히고 국가와 정부의 개념 등을 신중하게 강론하기도 했다.

<◇원주 교구>
가톨릭원주교구청의 지학순 주교는 4일 상오 11시부터 원주 원동교회에서 『최기식 신부가 문 등을 은신시켜 준 것은 사실이나 신부로서 그의 행동은 적절했다고 본다』고 주교로서의 입장을 밝혔다.
지 주교는 이날 성지 주일미사를 집전, 30여분 동안의 강론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최 신부가 사제로서 불쌍한 사람을 도우려다 그들의 신분이 밝혀지고 자수의 뜻을 얘기했을 때 즉시 당국에 자수시켰을 뿐』이라고 경위를 설명했다.
지 주교는 『문·김 등의 자수과정에서 최 신부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는 두고 보아야 하나 현재의 보도내용에는 왜곡된 부분이 많다』며 원주교구의 처사에 불만을 말하는 신도들을 무마하기도 했다. 지 주교는 예루살렘 입성 때 큰 환영을 받았던 「예수」가 바로 그 백성들로부터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처형된 사실을 들며 세상인심의 덧없음을 말하기도 했다.

<◇명동성당>
서울명동성당은 4일 상오 7시부터 시간마다 신도 5백∼6백여 명이 몰려 「예수 수난 성지 주일」이란 이름의 주일미사를 가졌다. 이날 미사에서 신부들은 마르코복음서에 나온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기를 전하면서 『진리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영원할 것이며 자신의 안일을 위해 거짓을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자』는 내용의 강론을 폈다.
이날 미사에서는 최근의 원주교구사태 등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 없이 다만 『서울교구와 원주교구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한다』는 짤막한 복음을 통해 신도들의 주의를 이끄는 모습을 보였다.

<◇한강 성당>
서울 동부이촌동 천주교 한강교회는 이날 상오 11시 원주교구 측과 함께 문·김의 자수과정을 도왔던 함세웅 신부의 집전으로 주일미사가 열렸다.
2백여 명의 신도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미사에서 함 신부는 10여분간의 강론도중 최근의 원주교구 사태에 대해 잠시 언급, 『「예수」가 당시 잘못된 여론과 오해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처럼 이번의 원주사태도 언론의 잘못된 보도와 여론에 의해 교회가 오해와 피해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오해가 풀릴 때까지 교회는 겸허한 자세로 변명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고 말했다.

<◇동대문 성당>
서울 숭인 2동 동대문성당 김승훈 신부는 이날 상오 11시 미사를 집전하면서 강론을 통해 『원주교구사건으로 성당이 시끄럽다. 이것이 사건화 되리라고 생각지 않았으나 몇몇 신부가 수사까지 받는 사태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많은 신도들이 왜 신부가 사건관련자들을 감춰주었느냐고 얘기했는데 그것은 오해이며 그 신부들의 사상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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