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Online 온라인] 게시판마다 군대…군대…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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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와 나란히 재미없는 이야기의 대명사로 꼽히던 '군대 얘기'가 최근 인터넷을 휩쓸고 있다. 전방 GP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마다 네티즌들이 쏟아내는 군생활의 악몽과 추억이 넘쳐난다.

아이디 dream05라는 네티즌은 소속 대학 자유게시판에 '가수 보아가 싫어진 이유'라는 요지로 군생활의 불합리한 측면을 담담하게 보여줘 공감을 샀다. 고참병사가 어떤 여자 연예인을 좋아하느냐고 묻기에 평소 좋아하던 외국 가수를 얘기했다가 벌어진 일이다.

"발끈한 고참은 바로 '지금부터 보아를 좋아해라. 그리고 보아 노래를 외워라. 오늘 중으로 보아 노래를 못 부르면 담배를 피울 수 없다'고 어이없는 명령을 했다. 결국 나는 부르지 못했고(중략) 지금도 보아를 매우 싫어한다."

다행히도 이 네티즌의 결론은 희망적이다. "○같던 인사장교에게 함께 욕먹고 싸대기 맞던 사람들도 제대 후에는 가끔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가 됐다"며 "떠올리기 싫은 기억도 많지만, 인생의 한 순간을 함께 한 군대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썼다.

박격포 부대에서 군복무를 마쳤다는 네티즌도 나름대로 군생활의 장점을 얘기한다. "혹독한 행군과 한겨울의 알통구보, 잠시라도 뛰지 않으면 '갈굼' 당하는 전투 축구, 단독 군장 5㎞ 구보 등 힘든 일도 많았지만 군 복무를 통해 강인한 체력을 기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마대 쌓기, 삽질은 기본이고 난생 처음 용접까지 해봤다"면서 "사회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나 경험을 군대 아니면 어디서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네티즌들은 "거지(이병)에서 왕(병장)까지 경험해 볼 수 있다" "시원한 콜라 한 잔 같이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다"는 말로 군생활의 긍정적인 면을 표현했다.

그러나 악몽 같은 일도 적지 않다. 한 네티즌은 "군부대 내 성폭행 문제로 친구가 자살했다"면서 "친구가 차라리 김 일병처럼 하지 못한 게 한스럽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충북 음성에서 군 복무를 했다는 네티즌도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었지만 변기에 머리를 박도록 하는 가혹행위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고 글을 올렸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일.이병 때에는 땅에 떨어진 초코파이를 먹으라고 하거나, 가톨릭은 이단이니 종교활동에 가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면서 "군대는 계급이 낮으면 무조건 죄인"이라고 지적했다.

군 복무를 앞둔 네티즌들은 "고참이 못살게 구는 게 두렵다" "사고로 죽으면 어쩌나"하며 걱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이를 반영한 듯 인터넷에는 '누나를 소개해 달라고 하면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말하라''PX에 줄을 서 있다가 선임병을 만나면 즉시 양보하라'등 '구타 안 당하는 요령 30가지'라는 글까지 떠돌고 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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