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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테너 박인수 정년퇴임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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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테너 박인수(65.서울대 교수)하면 1989년 가수 이동원과 함께 부른 '향수'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에야 클래식과 팝의 만남, 즉 크로스오버가 매우 자연스런 일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작업은 일부 음악인의 질시와 비난을 받았다.

급기야 2년 후 국립오페라단에서 축출되는 아픔까지 겪었으니 그에겐 이 노래가 꿈엔들 잊힐리가 있겠는가.

테너 박인수씨가 오는 7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민요 독창회'를 연다.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제자들과 서양 창법으로 민요를 부르는 것.

그가 25년 전 작곡가 김동진의 오페라'춘향전'에 출연하면서 클래식의 대중화 작업 못지 않게 마음 한켠에 묻어 두었던 필생의 작업인 신창악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무대다.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작곡가 최영섭이 1991년 CD 녹음 당시 서양식 오선보로 다량 채보(採譜)한 우리 민요 중에서 선보이는 '진도 아리랑''이별가' '정선 아리랑' 등 민요 마당이다.

조두남의 가곡 '새타령'만 제외하면 채보 또는 편곡이어서 가곡화된 민요에 비해 우리 소리의 시김새에 한층 근접해 있는 노래들이다.

'경복궁 타령' '임당수 뱃노래' '신고산 타령' '농부가' 등은 제자들과 함께 메기고 받는 식으로 흥겨운 무대를 연출한다.

이번 공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박교수의 정년 퇴임을 축하하는 뜻에서 도올 김용옥씨가 가사를 쓰고 박범훈 중앙대 부총장이 곡을 붙인 신민요'이 땅에 살자꾸나'의 초연이다.

오케스트라나 피아노 반주를 곁들이는 게 보통이지만 이번에는 장고.북.해금.가야금.거문고.목탁.피리 등 7명의 연주자들이 수성(隨聲)가락을 거들면서 시나위 한마당을 방불케 할 것으로 보인다. 플루트를 전공한 박씨의 아들 상준씨도 함께 거들 예정이다.

박교수는 정년 퇴임 후 서울대 명예교수로 주1회 출강하면서 성악아카데미를 설립, 틈틈이 민요 창법 호흡법 교육에 여생을 바칠 계획이다.

그는 "전통 창법으로는 마이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 핏속에 흐르는 가락과 장단을 서양 발성에 녹여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독창회는 김남조 시인,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김민 서울대 음대 학장, 박범훈 중앙대 부총장, 성완종 서산장학재단 이사장, 유덕형 서울예대 이사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 임권택 영화감독, 허충순 청양회 회장 등 예술계 인사들에 의해 마련됐다. 02-581-5404.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lully@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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